<실전 결혼>을 처음 연재하기로 했을 때
결혼에 대한 환상을 전부 깨뜨리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단지 왜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의 민낯을 모를까?

살면서 한 번도 써먹을 일 없는
수학, 과학은 그렇게 공부를 시켜놓고

막상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혼과 육아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걸까?

그런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엔 절대 모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험들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마지막 탈고를 앞둔 날
내 딸과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를 만나 그녀에게 물었다.

“왜 결혼의 실체에 대해선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는 걸까?”

“실체를 알면 아무도 결혼 안 하니까 그렇지.”

“아, 그래서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는 건가?”

“그렇지. 그 비밀을 알면
아무도 결혼 안 하고, 애도 안 낳을 텐데
그럼 세금은 누가 내?”

그녀의 말에 한바탕 웃은 후
금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지만
그 말은 온종일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 저녁
퇴근 후 돌아온 남편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당신도 결혼이 이런 건 줄
알았더라면 안 했을 텐데 싶지?

열정적이었던 사랑은 시들고
내 시간도, 내가 번 돈도 뭐 하나 마음대로 못 쓰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은 엄청나고...

톡톡 튀는 여친이었던 나는 뻔한 아줌마가 돼서
똑같은 잔소리나 늘어놓고 있잖아.

결혼이 이런 건 줄 미리 알았어도 결혼했을까?

남편은 전혀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난 결혼이 그런 건 줄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래? 근데 왜 결혼했어? 미쳤던 거야?”

“음, 결혼이 다 똑같은 줄은 알았는데
우린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알게 된 건 우리도 다르지 않았구나,
특별할 건 없었구나, 그거 하나야.”

“그럼 결국 실패한 거네.
특별한 상대를 못 고른 거잖아.”

“실패가 아니라 깨달은 거지.
특별한 상대를 만나서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야.

함께 결혼하고, 인생을 공유하고,
같이 애 낳고, 키우고…

이런 시간들이 특별했던 거야.

결국 그 시간이 너를 나한테
가장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거지.

이 세상에 여자는 많지만
우리가 같이 만든 이 결혼 생활 때문에
너는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됐고,
그 특별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즐겁게 살지 않았을까?
책임감도 훨씬 적었을 테고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자유로웠을 테니까.

모든 기대와 환상이 사라진 지금
결혼을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어떻게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결혼이라는 게
하나의 사회가 탄생하는 일이라면
결혼 생활은 역사와 같다.

평생 끈기 없이 살았던 나는
결혼을 통해 책임감과 끈기를 배웠고,
남편이 책임감과 끈기를
배우는 과정을 지켜봐 왔다.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갈등과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열정과 사랑이 의리와 신뢰로
변화하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이 모든 결혼의 역사가 나를 성장시켰다.

결혼 생활이 힘들다고
쉽게 이혼을 결심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만들어낸 이 작은 사회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덕분이다.

그리고 이를 함께 책임지고
끝까지 증명해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우리만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결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결혼 생활 7년 반.
앞으로 어떤 위기가 또 닥쳐올지 모르지만
나는 어찌어찌 결혼 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사소한 일들로 절망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들로 감명받으며.

 


[실전 결혼] 시리즈
"결혼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아티스트 심지아가 결혼하면서 겪게 된 에피소드를 전해 드립니다. 누군가의 솔직한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편집자: 구자민)



필자: 심지아

뉴욕 거주중.
결혼 6년차, 엄마 3년차, 인간 40년차.
결혼생활 어찌저찌 유지중.
본업 아티스트, 부업 자유 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