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가족여행으로
퀘백 시티에 놀러 갔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빨간 문도 보고
동화책에 나올법한
예쁜 거리를 구경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날씨도 좋아서
딸은 유모차에서 곤히 낮잠이 들었다.

남편과 근처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요즘 유행하는 트로피컬 풍의 벽지와
플랜츠를 많이 걸어둔 예쁜 카페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나는 하진이가 결혼을 안 했으면 좋겠어.”

“왜? 난 했으면 좋겠는데.
난 하진이의 아이를 꼭 만나보고 싶어.
그러니까 난 손주가 보고 싶거든. 
넌 안 그래?”

“뭐, 난 아이 낳는 것만 추천해주고 싶어.
아이를 낳고 키워보는 건 정말 축복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정말 너무 행복하니까..

근데 결혼은 굳이 안 해도 되지 않을까?

그냥 하진이가 자신과 자식 하나
책임질 수 있는 능력 갖춘 사람으로 자라서
맘 맞는 남자 있으면
애만 같이 낳고 키우면 좋겠어.

서류와 혼인서약으로
서로를 가두는 결혼이라는 걸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않냐, 이거야.”

“피. 넌 그렇게 결혼이 싫은데
왜 나랑 이러고 있는데?!”

“당신이 싫다는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가 싫은 거야.
왜 제도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

지금은 우리가 서로 함께 있어 하지만
언젠가는 싫어질 수도 있잖아.

한참 좋을 때 한 약속으로
평생을 지켜야 한다는 게,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인데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를 약속하게 하고
그걸로 책임감을 씌우는 게 너무 별로야.”

남편은 잠깐
생각을 정리하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네 생각과 딱 반대야.
난 하진이가 결혼을 안 하는 건
차라리 괜찮지만,
아이를 낳을 거라면
꼭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

왜?”

“남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좋아하는 여자랑 같이 살고
애도 낳고, 게다가 결혼으로 엮이지 않는다면
뭐 그야말로 최고지.
싫증 나면 떠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여자는 그렇지가 않지..
아이를 만들고 낳을 수 있는
생리적 시기도 남자에 비해서 짧고,

결혼 없이 남녀가 묶이면
여자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다고.
그것도 제일 중요한 이삼십대에 말이야.

결혼이라는
책임으로 묶이지 않는다면,
여자에겐 너무 힘들고 가혹한 상황이 될 거야.

난 그래서 우리 딸이 
누군가의 애를 낳는다면
더더욱 결혼을 해서
그 책임을 공식적으로
공동화해야 한다고 생각해.”

“흠.. 그건 듣고 보니 그렇네.”

갓 세 돌이 지난 딸 아이가
낮잠 자는 틈에
나눌만한 대화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제법 진지했다.

평생 엄마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가
우연히 엄마가 된 지 만 4년째,

지금은 태어나서
이보다 더 잘한 일은 없다 생각하고
하진이의 엄마가 된 것에
감히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만족하고 있는 나는

‘엄마’로 사는 것에
결혼이라는 안전장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는 두 사람의
행복한 출발이 아니라

인간들의 사랑과 본능, 욕구를
안전하게 충족시켜주기 위한
최선의 방어였던 건 아닐까.
 


[실전 결혼] 시리즈
"결혼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아티스트 심지아. 그녀가 결혼 생활 속에서 겪게 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가감 없이 전해 드립니다. 누군가의 솔직한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린 연애와 결혼에 대한 많은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을 거예요! <실전 결혼>은 매주 토요일 저녁 연재됩니다.
(편집자: 에디터 김관유)


 


필자: 심지아

뉴욕 거주중.
결혼 6년차, 엄마 3년차, 인간 40년차.
결혼생활 어찌저찌 유지중.
본업 아티스트, 부업 자유 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