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준다면서...

같은 잘못이라도
애인을 용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사람들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아주 너그러워서
사과받기도 전에 봐주기도

누군가는 정식으로 사과를 받았을 때
용서를 해주기도

누군가는 사과를 받고서 조금 더 버티다
못 이기는 척 풀어주기도 하죠.

하지만 이 세 가지 부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용서'에 아주아주 인색한 경우죠.

정말로 그다지 큰 잘못이 아닌데도,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도
정식으로 다 받았는데도,

애인 피가 다 마르도록
용서를 잘 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작은 잘못 하나라도 생기면
웬만해선 용서를 해주지 않는 사람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용서가 잘 안되는 사람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의 신희천 교수는
'남을 잘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는데요.
연구 도중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죠.

용서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상대를 용서하겠다는 '마음'은 있다는 거였어요.

단지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죠.

그러니까 아예
용서할 생각 없음!! 정도로
기준이 엄격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럼 이들은 왜 용서를
행동에 잘 옮기지 못하는 걸까요?

신 교수는 이들이 사실
"용서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심리학에서는 이런 성향을
'자비 불안 (fear of compassion for others)'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말 그대로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에
불안감을 느낀다'라는 건데요.

자신이 베푼 자비 때문에 이용당하거나
상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남들보다 훨씬 심하게 하는 거죠.

보통 이런 자비 불안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안 좋은 기억들 때문에 생긴다고 해요.

순수한 마음으로
부모나 형제, 친구에게 베풀었던
어떤 '자비로운 행동'이 인정받지 못하거나
되레 이용당한 경험을 한 경우엔 더 심해지죠.

어린 마음에 당연히 상처를 받았을 테고,
그 상처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마음 편히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죽을 죄를 졌어?

문제는 이런 모습이
남들 눈에는 '너무 빡빡하다'거나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 대인관계에서
아주 큰 우울감을 느낀다고도 하죠.
(김희영, 2004)

남들로부터 안 좋은 시선을 받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이런 자비 불안은
그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아주 강한 방어기제들로 둘러싸여 있어요.

그런데 애인으로부터 '속이 좁다'처럼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면
경계심은 더 커지기만 할 테고,
용서는 점점 먼 세상 얘기가 되겠죠.

용서와 멀어질수록
사람들과도 점점 멀어지는 거예요.

 

그래도 내 애인이니까!

그럼 이 자비 불안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용서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믿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학계에서는
'용서'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하도록 해줘야 한다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부정적인 기억들 때문에
'자비를 베푸는 일'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거니까요.

새로운 좋은 기억으로
다 덮어버려야 하는 거죠.

첫 번째로 가장 단순한 방법은
애인이 '자비로운 모습'을
먼저, 또 최대한 많이 보여주는 거예요.

혹시 애인이 조금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한동안은 통 크게!
망설임 없이 용서하고 넘어가 주는 겁니다.

"괜찮아. 실수였잖아.
난 이해하니까 괜찮아!"

적어도 '애인을 용서하는 일'은
위험하지 않다는 걸 먼저 보여주는 거죠.
내가 상대에게 가지고 있는 신뢰도 보여주고요.

 

내가 잘못했던 건..

두 번째는 '용서 주고받기'입니다.

이는 실제 용서를 잘 하기 위한
치료 프로그램에도 들어가 있는 방법인데요.

만약 애인과 함께 이 글을 읽고
애인도 자신에게 '자비 불안'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면, 두 분이 함께 해보세요.

먼저 두 분이 각각 지금까지 내가
상대에게 잘못했던 일들을 떠올려
주욱 적어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잘못 리스트'를 서로에게 건네주세요.
사과의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과 함께요.

그럼 그 리스트를 보고
다시 서로에게 그 일을 용서한다는
'용서의 편지'를 한 통씩 써주는 겁니다.

이는 '편지를 통해'서
또 '동시에' 서로를 용서하는 방식이라
자비 불안을 가진 사람도 훨씬
마음 놓고 임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일종의 용서 연습인 거죠.

 

그래서 그랬구나!

사소한 일도
잘 용서해주지 않아
이해되지 않았던 내 애인이
사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애인의 도움과 개인의 노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

앞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 애인의 행동이 있더라도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이런 깊은 관심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다면
안타까운 이별과 후회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김관유 에디터의 후기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