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이별은 온다

이별은 누구나 힘들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더 심하게
이별을 힘겨워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비련의 주인공처럼
상대방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긴 시간 힘들어한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는
다양한 심리적인 이유가 있다.

흔하게는 연인 관계에
연애 그 이상의 의미 부여를 했을 때다.

결혼, 함께할 미래…
연애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그려놓았던
인생 계획이 전부 무너졌을 때의 충격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또한 믿었던 연인에 대한 배신감으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단순히 상대방에 대한 믿음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별을 힘들게 만드는 감정은 또 있다.
바로 죄책감이다.

 

죄책감이라는 늪

20대 중반의 여성 J씨는
1년의 연애 끝에
상대방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다.

헤어진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지만
J씨는 심한 우울감과 의욕 저하를
호소하며 진료실을 찾았다.

1년의 세월 동안 그녀는 많이 변했다.
몸무게도 줄었고, 잠도 줄었고,
친구도 줄었고, 자존감도 줄었다.

모든 것이 작아진 대신
필요 이상으로 커져 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다.

 

 

그녀는 이별한 뒤
이미 연애 기간만큼이나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애의 마지막 장면에 머무르며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걸까?

그렇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그녀에게 그만한
잘못은 없었다.

제3자가 보기에는
그녀는 단순히 변심한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은 것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왜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이별했다고 믿는 것일까?

 

죄책감이 무서운 이유

죄책감은 자신의 무력함과 슬픔에 대한
방어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크기의 죄책감이 아닌
과도한 죄책감의 경우에 더 그렇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J씨는 남자친구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

변심한 남자친구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단순한 사실,

그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이별의 원인을
자꾸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연인 관계를 계속 이어갈지
끊을 것인지 결정한 요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도한 죄책감에
사로잡히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J씨 또한 SNS를 통해 전 남자친구가
잘 지내는 모습을 확인해도
죄책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항우울제도 그녀의 죄책감을
줄이지 못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용서받을 수 없으니 그녀의 우울증은
해결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죄책감을 극복하려면
사실을 직시하고 다음 단계인
‘슬픔’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슬픔은 힘들지만 결국엔
지나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슬픔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연애를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행복으로 가득했던 봄, 여름, 가을을 지나
결국 끝은 추운 겨울로 기억된다.

J씨의 연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과 보낸 긴 시간을
마지막 감정으로만 기억한다.

따뜻하고 설레던 봄,
뜨겁던 여름, 그리고 편안했던 가을…
이 모두를 잊은 채 눈보라 치던
한겨울의 날씨만 기억한다.

그때 상대방을 미처 따뜻하게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계속 괴로워하고 슬퍼하지만
우리는 사계절동안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서로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니 관계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죄책감을 떨치고,
충분히 슬퍼하고 난 뒤엔
내가 한뼘 더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문제적 연애] 시리즈
김지용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만드는 연애심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당신에게 꼭 필요한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편집자: 구자민)



필자: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