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ly on 연애의 과학

지난 글에서 괴로운 기억은
사실적 기억으로 바꾸어서
극복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도 알아보았습니다.

(링크: 1편 글 보러 가기)

오늘은 나쁜 기억을 극복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을 같이 살펴볼게요.

1편을 읽지 않으셨다면
먼저 읽고 오시길 추천드려요!

 

보가트 퇴치법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보가트’라는 마법 생물이 나옵니다.

보가트는 상대가
가장 무서워하는 모습으로
변신하는 괴물인데요.

이 보가트를 퇴치하는 방법은
그 무서운 대상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강하게 떠올리는 것이랍니다.

 

(이미지 = 영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두 번째 방법은
보가트 퇴치법과 비슷해요.

바로 나쁜 기억에 나쁜 감정 대신
다른 감정을 엮어놓는 것입니다.

 

누구나 코털은 있다

예를 들어 나에게 담담하게
이별을 고하는 상대방의 모습
마음에 남아 상처가 되었다고 하죠.

그 이미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을 쉬기 어렵고
눈물이 날 것 같이 괴로워집니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의
왼쪽 콧구멍에서 코털 한 가닥
살포시 삐져나와 있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깨지고
지긋이 웃음을 참아야만 하는
상황이 될 거예요.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할수록
더 좋습니다.

삐져나온 코털 끝자락에
자그마한 코딱지 부스러기가
붙어있는 모습까지 그려보세요(으으!).

이런 식으로 원래 있었던 기억에다가
우습고 이상하고 어처구니없는 상상
자유롭게 결합해서 떠올리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기억에 엮인 감정의 색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된답니다.

이것이 비결의 전부입니다. (ㅎㅎ)

 

기억 바꾸기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1편에서 기억은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했어요.

사실적 기억감정적 기억이죠.

기억 속의 특정한 사실에는
특정한 감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추억의 장소를 떠올리기만 해도
포근하고 따뜻한 마음이 든다면
그 장소의 기억에는 그런 따뜻한 감정이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사실과 감정의 연결은
원래 뇌에서 자동으로 만들어지지만
내 뜻대로 바꿔끼울 수도 있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앵커와 트리거예요.

 

감정의 닻

앵커anchor는 배에 쓰이는 을 뜻해요.

인지심리학에서는 어떤 기억에
의도적으로 다른 감정을 닻처럼 걸어놓는 것을
앵커링이라고 부른답니다.

 

(이미지 = 닻)

 

고통스러운 기억이 덮쳐오는 순간
기쁘고 기분 좋은 감정적 기억을 떠올리면
뇌가 부정적 감정을 불러오려던 것을
멈추거나 약화시킬 수 있어요.

기존에 걸려있던 감정의 닻 대신
다른 닻으로 바꿔치기를 하는 거죠.

이 작업을 머릿속으로 몇 번 반복하면
연결되어 있던 감정이 바뀌어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려도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하려면 쉽지 않아요.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기 직전에
긍정적인 감정을 끌어와야 하는데
타이밍이 늦어지기 십상이죠.

그래서 긍정적인 감정의 방아쇠(트리거)
되는 것을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아요.

위에서 코털을 상상하면서
이별의 아픈 기억
코털의 웃긴 감정을 결합했죠?

이 경우 ‘코털’이라는 단어를
앵커링된 웃긴 감정을 불러오는
트리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아픈 기억이 떠오를라치면
코털, 코털… 하고 중얼거리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의 왼쪽 콧구멍에서
삐져나온 코털과 그 끝에 묻은 이물질이
즉각 떠오르면서 고통을 막아줍니다.

이것을 여러 번 하다 보면
그 기억에 아파하고 싶어도
아파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답니다.

꼭 우스운 감정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기분 좋게 하는 감정이면
뭐가 됐든 괜찮습니다.

이를테면 유튜브 영상을 통해
피지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본 적 있다면
그때 느낀 경이감을 갖다 쓸 수도 있겠죠.

 

제가 아이언맨입니다

시각적인 이미지만이 아니라
청각, 후각 요소를 더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번에는 이별한 상대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보이며 멀어지는 모습을
예로 들어볼게요.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슬픔이 느껴지는 기억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몇 걸음 떼자마자
어디선가 박진감 넘치는 BGM이 흐르더니,
갑자기 천장을 부수고 아이언맨이 등장합니다.

 

(이미지 = 영화 '아이언맨 2')

 

주변 사람들은 넋이 빠져
망연자실하거나 달아나기 시작하고
부서진 시멘트와 자욱한 먼지 냄새까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요?

어떻든 기존에 느끼고 있던 감정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상상 속에 음악이나 효과음, 냄새, 맛
여러 감각적인 정보를 포함시키면
뇌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반응하기 시작해요.

영화감독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기억 속의 장면들을 편집하며
새로운 장면과 감정들을 붙여넣어 보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그 기억이 덮쳐오려 할 때마다
아이언맨, 아이언맨… 하고 중얼거리는 거죠.

다시 한번 앵커링 방법을 정리할게요.

  1. 나쁜 기억을 떠올린다.
  2. 나쁜 감정이 찾아오려 할 때
    엉뚱한 상황을 연결시킨다.
  3. 2번을 반복해서 감정의 연결을 끊고
    다른 감정을 결합시킨다.
  4. 트리거 단어를 만들어서
    새로운 감정 결합을 강화한다.

 

앵커링의 힘

사실 앵커링은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사용하는 세뇌 테크닉이기도 합니다.

과거 일본의 옴진리교에서는
교단 간부가 특정 단어를 말하면
신도들이 즉각 행복감을 느끼도록
앵커를 걸어 세뇌했다고 해요.

그만큼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효과가 있는 기술이랍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앵커를 걸면
그것은 세뇌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나에게 스스로 앵커를 거는 것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도구가 됩니다.

옛말에 같은 이슬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지만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고 했죠. (ㅎㅎ)

이번 '기억 삭제법'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불편하고 싫은 기억도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거예요.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꺼낼 때마다 뇌에서 재조립되는 것이고
방법만 알면 생각보다 훨씬 쉽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글에서 세 번째
기억 삭제법을 들고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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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진 에디터의 후기

본 에디터는 마블과 아무 이해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