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의 루틴

routine[ruːˈtiːn]

1.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
2. (지루한 일상의) 틀, (판에 박힌) 일상

사람들의 행동에는
일종의 ‘루틴’이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만 생각해봐도
나에게 특정한 루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켜지고 있는
이런 루틴들을 찾아보는 건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에요.

섹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겐 각자 섹스를 하는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섹스의 루틴’을 되짚어 보는 일이
내 섹스 라이프를 통째로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당신의 섹스 루틴은?

일단 물어볼게요.
여러분의 섹스 루틴은 무엇인가요?

지난 파트너들과의 섹스를
모두 되짚어 보세요.

파트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 항상 비슷하게 진행되는
루틴이 보일 겁니다.

꼭! 하는 것들도 있고
절대! 하지 않는 것들도 있을 거예요.

예를 들자면,
늘 불을 끄고 시작한다거나,
항상 남성 상위 체위로 시작한다거나,
오럴 섹스는 절대 안 한다는 것처럼요.

 

근데 왜 그렇게 섹스해요?

그런데 여러분의 이런 섹스 루틴이
어떻게, 왜 생겼는지는 생각해보셨나요?

“왜 항상 불을 끄고 해요?”
“왜 그 체위로만 시작해요?”
“왜 오럴섹스는 안 해요?

이런 질문들을 해보면
대개 나오는 답변이 이런 종류입니다.

“음… 창피해서요.”
혹은
“그냥 원래부터 그랬어요.”

하지만 ‘창피하다’ 같은 대답은
정확한 이유보다는 느낌에 가깝죠.
'원래부터'는 마치
“제 유전자가 원래 그래요” 같은 대답이고요.

왜 창피하다고 생각하게 됐는지,
왜 그렇게 하게 됐는지는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내 몸으로 하는,
나의 섹스인 데도 말이에요.

 

누구한테 배웠니?

학계에선 사람들의 섹스 루틴이
크게 두 가지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1) 사회적 관습

“여자는 섹스를 너무 밝혀선 안 된다.”
“남자는 섹스를 리드해야 한다.”
“성욕을 드러내는 건 창피한 일이다.”

사람들은 우리 사회와 문화 속에서
관습적으로 전해져내려오는
고정관념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오랫동안 봐 왔던
항상 남자가 스킨십을 주도하는
Tv드라마나 영화, 혹은 포르노물.

관계에서 끌려다니는 남자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사회적 분위기나
스킨십에 적극적인 여자는
‘가볍다’는 사람들의 통념.

섹스는 부끄러운 것이고
늘 몰래, 조용히 숨겨야 한다는 생각같은 것들이죠.

이런 사회문화적 영향들 아래서
많은 사람들이 수동적이며 기계적인,
‘개성 無’의 섹스 루틴을 갖게 됩니다.

 

2) 주변인들의 영향

- 내 신체적 특징을 놀리던 친구들
- 일방적이고 강압적이었던 애인
- 섹스 도중 상처를 준 애인의 말

내 신체적 특징
놀림감으로 삼았던 친구.

생애 첫 섹스에서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던 옛 애인.

섹스 도중 나에게 큰 상처를 준
파트너의 말이나 행동.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끼친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은 섹스에 특수한 태도나 

트라우마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회적 관습을 통해 만들어진 섹스 루틴을
조금씩 바꾸어 놓아요.

예를 들자면,
몸매 지적을 받았던 첫 섹스의 트라우마 때문에
불을 끄고 섹스를 시작하는
특정한 루틴이 더해질 수 있는 거죠.

 

여러분이 영향을 받은 것

이렇게 만들어진 여러분의 섹스 루틴은
좀 더 자유롭고 도전적인 섹스를 막는
틀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섹스 루틴을 점검해보고,
그 루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것이 여러분의 섹스 라이프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순 있어요.

나의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섹스에 대한 태도’
‘주체성’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기회니까요.
(김영기, 2011), (이인숙 &문정숙, 2000)

내가 갇혀있는 틀은 없는지,
불필요하게 지키던 과정이나 습관은 없는지
확인해보는 겁니다.

자, 다시 한번 묻습니다.

"여러분의 섹스 루틴은 무엇입니까?
또 그 루틴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게
좀 더 짜릿하고 새로운 섹스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김관유 에디터의 후기

저는 밥 먹을 때 숟가락을 꼭 뒤집어 놓는
루틴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