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를 아시나요?

폴리아모리란 서로의 동의 아래
여러 명과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를 뜻합니다.
보통 ‘비독점적 다자연애’로 번역되죠.

연애의 과학은
국내 최초의 폴리아모리 관련서인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의 공동저자
심기용 씨를 인터뷰했어요.

아래 내용은 2편에서 이어집니다.
인터뷰 1, 2편을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

1편: "왜 1명만 사랑해야 하죠?"
2편: 여러 명과 연애하면 데이트는 어떻게?

 

 

어느 쪽이 문제?

문형진(이하 문):

폴리아모리가 널리 알려지면
지금의 연애관이나 결혼관이
많이 흔들릴 수도 있잖아요.

폴리아모리가 사회적 혼란
부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반박할 수 있으신가요?

심기용(이하 심):

저는 거꾸로
지금 우리 사회의 연애가
진짜 위태롭다고 생각해요.

연애의 내용 면에서
너무 문제가 많거든요.

성차별, 여러 형태의 데이트 폭력,
가스라이팅…

결혼으로 가더라도
가정 폭력이 어마어마하고
이혼율도 굉장히 높고요.

 

 

그런데도
이성애 독점 제도는 안정적이고
폴리아모리는 문제라고
보는 이유가 뭘까요?

소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문제점이
여기에서도 드러나죠.

사회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가 다수고 보편적이니까
당연히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반면 소수자는 새로우니까
너희는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문:

보편적인 일대일 관계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심:

아까 폴리아모리에서
관계 협상이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폴리아모리에서만 그런 게 아니에요.
모든 연애에서 협상이 필요하거든요.

지금 우리 주변 연애에선
그런 대화를 너무 안 하고요,
저는 그게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폴리아모리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내가 모노아모리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게 문제라는 거죠.

 

 

상대가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모르는 거잖아요.

하다 못해 섹스를 하더라도
‘나는 삽입은 하기 싫다’ 또는
‘나는 이런 섹스를 하고 싶다’ 등등…

의견 차이가 예상되는 지점에 대해
누구나 차근차근 얘기를 해야 돼요.

폴리아모리라는 것도
그런 관계 협상 속의 한 가지 종목,
이슈일 뿐이거든요.

서로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협상하자,
그런 얘기도 좀 하자는 주장이
과연 어떻게 혼란을 일으킨다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문:

여러 명을 만나는 것보다도
소통의 부재가 사회적 혼란을
부르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근데 폴리아모리를 하는 사람들은
같은 폴리아모리스트만 만나나요?

심:

당연히 그렇지 않죠. (웃음)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상대를 골라서 빠지는 게 아니잖아요.

우연한 계기로 호감을 가졌는데
상대가 폴리아모리 개념을
아는지조차 모르겠고…

그럴 땐 대화를 해서 최대한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하죠.

관계의 기본 설정이
모노아모리인 상태에서
상대를 이해시킨다는 건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예요.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데서부터 설명해야 돼요.

참 사랑을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문:

본인도 그렇지만 그 상대도
많이 힘들겠는데요. (웃음)

심:

맞아요, 그래서 주변에서도
결국엔 실패한 얘기가 많아요.

폴리아모리와 모노아모리가
결합하는 형태는 대부분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어요.

안 맞으면 헤어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들은 쉽게 하죠.

몇 주 동안 평행선을 달리면서
미친 듯이 싸우거든요.

왜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좋아하니까 그렇죠.

좋아하는 감정이
들어버리는 걸 어떡하겠어요.

서로 양해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겪지만 스트레스가 엄청나죠.

 

 

문:

상대가 원하지 않는 연애 방식을
계속 주장하는 건
이기적인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심:

그런데 그 반대로
이타적인 사랑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상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그 사람의 일부분이잖아요.

그걸 배제하고 없애려 하는 것과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다
긍정하고 존중하는 것,
둘 중에 어느 쪽이 이기적인가요?

 

 

근데…
사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반박하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거고요. (웃음)

이타적인 사랑이라는 표현은
폴리아모리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부를 수 있어서
별로 쓰고 싶지가 않아요.

막 질투도 없어야 되고
평등하게 모든 사람 사랑해야 되고.

중요한 건 내가, 혹은 우리가
너와 어떤 관계를 맺고 싶냐는 거예요.

폴리아모리를 하게 되면서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알게 되고
대화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그거에 비하면 그 사랑이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예요.

문:

인터뷰가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어요.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심:

세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선 첫 번째,
폴리아모리 관계를
시도해보고 싶은 분들한테는…

아직 다른 사례나 롤모델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서
각자 삶 속에서 부딪쳐야 하는
문제가 많을 텐데,

화이팅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고통을 감수하셔야 한다는 것.

상대와 관계 협상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이해받는 것도
굉장히 어려우니까요.

문:

두 번째는요?

심:

제가 연애를 하고 있지만
그게 당신을 만날 수 없는
이유는 아니기 때문에 (웃음)

저에게 관심 있으시면
연애 여부 좀 물어보지 말고…

연애한다고 다른 사람
못 만나는 사람 아니니까
관심 있으시면 연락 좀 주세요.

저 그렇게 부담스러운 사람 아니에요.

문:

아니, 여기서
애인구함 광고를? (웃음)
마지막 세 번째는 뭔가요?

심:

폴리아모리스트를 만나거나
연애, 혹은 결혼 중에 폴리아모리를
제안하는 파트너 때문에
저를 찾아오는 분들이 계세요.

페북이나 이메일로 상담을
청하는 분들도 있고,

“네가 낸 책 때문에 내 애인이 변했다”
하고 비난하는 분도 계시고요.

그런 분들은 많이 당황스럽겠지만
상대도 그걸 얘기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걸 이해하고,
탓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상대분도 사랑하는 애인의
반응 때문에 고통스럽고 힘들 거예요.

그럼에도 솔직하게 털어놓은 거니까
대화를 많이 하시면 좋겠습니다.

저한테 상담하러 오셔도 괜찮아요. (웃음)

문: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여러 좋은 말씀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