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연애를 하다 보면,
누군가를 정말정말 사랑하다 보면,
가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내 모습
발견하게 되곤 합니다.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이렇게 감정적으로 굴거나
내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못된 말을 해버린다거나,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버리기도 하죠.
맘에도 없는 “헤어져!”를 내뱉기도 하고요.

얼마 전엔 ‘감정 컨트롤 능력’이란 원인으로
이런 행동들을 설명하고 살펴봤었죠?

오늘은 그 원인을
조금 더 깊은 곳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성숙하지 못해?

여러분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이
꼭 여러분 자신이나, 여러분의 애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둘이 하는 연애인데
그럼 어디에 있냐고요?

‘과거' 속에요.
어린 시절의 기억 속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모든 인간에게는
어린 시절 동안 충족되어야 할
기본적인 욕구들이 있다”고 해요.
(Erikson, 1959)

바로 부모로부터 ‘신뢰’나 ‘인정’을 얻고,
‘안정적인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죠.

부모가 아이의 그런 욕구를 잘 채워주게 되면
아이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부모가 그 역할을 잘 해내는 건 아닙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떤 부모는 그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아이에게 되레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우는 아이를 무시하고,
실수한 아이를 과도하게 나무라고,
아이와의 약속을 쉽게 어기고...
아이를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엔 소리를 지르고 손찌검을 하기도 하죠.

이런 경험을 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불신, 애정 갈구, 분리 불안 같은 

여러 결핍에 시달리게 됩니다.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그 결핍들은 연애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죠.

어릴 적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제가 여덟 살 즈음인가? 

아빠한테 크게 혼나고
매를 맞은 적이 있어요. 

심부름을 늦게 했다는 이유 때문에요.

근데 사실 저는
아빠가 좋아하는 간식을 

하나 더 사다 드리고 싶어서... 

그걸 고르느라 늦은 거였거든요...”

이 아이는 훗날 성인이 된 뒤
애인이 자신을 ‘오해’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몹시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아 씨, 짜증 나.
그래 니 맘대로 생각해. 그냥 헤어져.”

어릴 적 받았던 상처가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어서,
비슷한 문제나 상황에 놓이게 되면

감정적인 반응부터 불쑥 튀어나오는 거죠.

 

불쌍한 그 아이

이렇게 어린 시절의 상처나
결핍을 가진 채로 자란 사람들에게
심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씁니다.

"당신 마음속에

상처받은 아이(wounded child)가 살고 있다"

겉은 다 큰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상처받은 아이가 남아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아직도 너무 아파!”
“나에게 큰 믿음을 보여줘!”
“제발 나를 떠나지 마!”
“나를 더 사랑해줘!”

누구에게? 부모에게?
아니요. 바로 애인에게요.

문제는 마음 속에 사는 건

아직 ‘아이’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차분한 대화가 아니라
땡깡이나 옹고집, 도망, 버럭하기! 같은
어린아이의 표현 방식을 쓰게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거죠.
그럼 여러분과 애인은 이렇게 생각할 테고요.

‘난(넌) 왜 이렇게 성숙하지 못할까?'

 

그럼 어떻게 하죠?

이런 오랜 결핍과 상처를
채우고 치유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그 상처받은 아이를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거죠.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공유하기 시작하세요.
가장 오랜 기억부터 차근차근, 하나하나.

분명 상처받았던 일들이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떠 오를 겁니다.
빠짐없이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상처받았던 아이를 떠올려냈다면,
이제 두 사람이 함께
그 아이를 위로해줘야 합니다.

어떻게 위로해주냐고요?

두 사람이 꼭 함께 ‘소리내어’ 
말해주는 거예요.
마치 어린 시절의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처럼요.

“그런 일을 겪어서
얼마나 속상했을까?
어떤 아이라도 그런 상황에선
울고 싶어질 수밖에 없었을 거야.”

매우 보편적인 심리치료의 한 방법이랍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옛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하다 보면,
이상하기만 했던 내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할 겁니다.

잘 위로받은 내면의 아이는
위안을 얻고 다시 성장을 시작할 거고요.
그럼 여러분의 연애도 조금씩 달라질 겁니다.

마음속의 그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지 마세요.

그저 옛날 일이라고 내버려 둔다면,
그 아이는 평생 홀로 외롭게 울다가
가끔 튀어나와 드러눕고 소리를 지를 겁니다.


김관유 에디터의 후기

애인과 미래를 약속하고 싶다면,
과거에서부터 출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