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글이네요.

‘진화심리학’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워낙 호불호가 갈리고
첨예한 다툼이 벌어지는
학문이니까요.

그래도 언젠가 진화심리학이
받아들여지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용기를 내 시작해 보았습니다.

연재 시작 후 댓글을 보니 역시나
날카로운 말씀이 많더라고요.

과학은 좋고 싫고의 영역이 아닌데도
이렇게 감정적인 반응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저변에 우리 문명 발달의
흔적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성한 인간

중세는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신성한 인간
과학이란 잣대로 연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죄악시되었죠.

그래서 의학은 발전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철학자 데카르트가
‘심신이원론’을 주장합니다.
마음과 몸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미지=르네 데카르트)

 

“인간의 몸과 마음은 다르다.
마음은 하나님이 창조한 신성한 것이지만
인간의 몸은 그렇지 않다.”

이때부터 비로소 의학과 해부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신성하지 않은 몸은 과학적 사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유독 단 하나의 분야만큼은
여전히 의학 발전의 길이 막혀 있었죠.

바로 정신건강의학입니다.

실제로 현재 정신건강의학은
엄밀한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심신이원론의 잔재가 아직
우리에겐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 거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인간의 마음이
동물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아무리 조사해봐도
우리 마음에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뇌의 전기 신호, 화학 신호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진화론은 받아들이면서
우리 마음 역시 진화의 결과물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심신이원론의 잔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사실과 가치

또 한 가지 진화심리학에 대한
거부감을 낳는 결정적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사실의 문제가치의 문제
구별하기 어려워한다는 거예요.

사실과 가치를 구별하지 않으면
진화심리학에서 주장하는 것들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거든요.

예를 들어 진화심리학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많은 이성과 짝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흔히 나오는 반응이
“남자들의 그러한 성향을
합리화하려는 것 아니냐”지요.

전자는 사실이고 후자는 가치입니다.

과학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어떤 경향이 더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뿐
‘그래도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진화심리학은 남녀의 심리 차이에 대해
많은 설명을 내놓지만
그것이 ‘남녀를 차별하라’
주장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페미니즘을 옹호하시는 분들이
진화심리학을 많이 불편해하시지요.

이 글을 읽고 그러한 오해를
꼭 풀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남녀의 심리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진정한 성평등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녀는 같다는 가정이나
불분명한 차이에 기반을 두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구한다면
제대로 된 평등에 이를 수가 없죠.

 

나는 아닌데?

이 두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이 진화심리학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밉니다.

대표적으로 많이들 하는 말이
‘나는 아닌데?’
‘다 그런 건 아닌데?’입니다.

제 연재글에도 그런 댓글이
가장 많이 달렸죠.

하지만 그건 마치 흡연가가
‘우리 할머니는 담배 피우고도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셨는데?
흡연은 폐암 원인 아닌데?’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법칙이든 당연히
예외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예외가 있다고 해서 본래 명제가
틀린 것으로 증명되지는 않죠.

 

 

그런데도 예외를 제시하며
진화심리학의 논변을 부정하려는
반응을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조건을 무작위로 했을 때
남녀 동일할 것으로 예상했던 요인이
60%로 한쪽에 치우쳐서 나온다면
그 치우침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데 나머지 40%를 끌고 와서
‘차이가 없다’고 해버리면
건설적인 논의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은 뇌의 작용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진화심리학도 진화론처럼
여러 갈등과 오해를 극복하면서
점차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뇌의 작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뇌는 당연히 진화의 산물이니까요.

우리가 심신이원론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길 바라며
연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수컷과 암컷 사이] 시리즈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진화심리학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연애는 훨씬 즐거워질 거예요! (편집자: 문형진)



필자: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JTBC2 《오늘의 운세》, TV조선 《기적의 습관》 패널 출연 중. 유튜브 《싸이들의 잡학사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