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진화론이 연애랑 무슨 상관인데요?
2편: 남자와 여자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3편: 왜 남자에겐 바람둥이 유전자가 탑재됐을까
4편: 진화 관점에서 본 ‘여사친’이 위험한 이유
5편: 모든 남자가 바람둥이로 진화하지 않은 까닭은?

6편: 남자와 여자의 심리, 임신이 결정한다? ← 보고 계신 글

 

이전 글들에서는
현재 남녀의 연애 행태 뿌리에
인간 조상 수컷과 암컷의 성 전략이
자리하고 있음을 살펴봤습니다.

수컷은 성관계 횟수와
자손 생산이 직결되기에
성관계에 매우 적극적이지만
암컷은 그렇지 않다,

다만 인간은 부양 투자라는
특별한 변수 때문에
남녀 차이가
다른 동물보다 적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 연재글 5편 참고)

하지만 격차가 줄어든 것이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글에선 일반적인 성 전략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성 전략을 가진
동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남녀가 성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유
더 분명하게 알게 되실 거예요.

 

편형동물의 결투

편형동물은 좌우 대칭 몸 구조를 가진
납작하게 생긴 동물입니다.

대개 자웅동체로 한 개체 안에
암수 생식기관을 모두 갖고 있죠.

 

(이미지=편형동물)

 

그렇다면 편형동물은
혼자서 번식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근친교배의 위험성 때문이에요.

유전적으로 불리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편형동물도
짝짓기를 통해 번식합니다.

그러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기죠.

편형동물은 자웅동체인데
누가 수컷 역할을 하고
누가 암컷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페니스 펜싱’이라고 불리는
치열한 싸움을 벌여 역할을 정하죠.

말 그대로 자기 페니스를 꺼내서
서로 찌르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서로 숙이고 휘두르고 튕겨내는 등
정말 펜싱 경기가 따로 없습니다.

 

(영상=편형동물의 ‘페니스 펜싱’ 장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싸움에서 이긴 개체는
수컷을 하려고 할까요, 아니면
암컷을 하려고 할까요?

답을 아시겠나요?

이전 연재글들을 읽으셨다면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미지=편형동물)

 

그렇습니다.

이긴 개체가 수컷 역할,
진 개체가 암컷 역할을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컷은 임신을 하지 않으니
자손을 만드는 데
비용이 별로 들지 않죠.

반면 암컷은 임신을 하니
너무나도 큰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똑같은 물건을 사는데
수컷은 100원, 암컷은 100만원
지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양쪽 모두 자손이라는
같은 결과를 얻는 상황이니
기왕이면 비용을 적게 치르는 쪽이
되고 싶겠죠?

편형동물은 어찌나
암컷 역할을 하기 싫어하는지
거의 1시간가량 싸움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결국 페니스에 찔리는 쪽이
정자를 주입당해
암컷 역할을 떠맡게 되지요.

 

(이미지=내셔널 지오그래픽)

 

그럼 무조건 암컷은 안 좋고
수컷은 좋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체외수정을 하는 어류 중에는
수컷이 임신하는 종도 있거든요.

 

오빠, 임신 축하드려요

수컷이 임신? 뭔가 이상하죠?

그런데 육상에서는 드물지만
물속에서는 수컷이 새끼를 책임지고
양육하는 경우가 꽤 많답니다.

왜 그런지 설명해드릴게요.

일단 생물학에서는 수컷을
생식 세포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개체로 정의합니다.

당연히 암컷은 생식 세포의
크기가 큰 개체겠지요.

사람도 정자보다 난자가
훨씬 크다는 점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미지=인간의 정자와 난자)

 

이제 어류들의
체외수정 과정을 볼까요?

암컷과 수컷은 각자
자신의 생식 세포를 물속에 내놓고
수정을 시킵니다.

임신은 피하고 싶은 값비싼 투자이므로
수컷과 암컷 모두 생식 세포를 방출한 후
수정이 막 끝난 알을 남겨두고
그냥 도망가고 싶어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방치된 수정란이
성체가 될 때까지
제대로 클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곳곳에 포식자가 있으니까요.

따라서 암컷과 수컷 둘 중에
누군가는 남아서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 눈치 게임입니다.
승자는 누가 될까요?

힌트는 ① 생식 세포의 크기 차이,
그리고 ② 수중 환경입니다.

 

 

암컷은 수컷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자를
먼저 방출해도 문제가 없어요.

난자는 크고 무거워서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 있거든요.

반면 수컷이 서둘러
정자를 방출하는 경우
암컷이 준비하기도 전에
물속에서 흩어져버립니다.

이러면 수정이 이뤄지지 않을 테니
암컷은 난자를 방출하지 않죠.

조금 감이 오시나요?

이 눈치 게임의 승자는
늘 암컷입니다.

정자가 쉽게 흩어지기 때문에
수컷은 암컷보다 생식 세포를
늦게 내보낼 수밖에 없어요.

암컷은 그렇게 생긴 몇 초 사이에
수정란을 수컷에게 떠맡기고
유유히 사라질 수 있는 겁니다.

해마나 실고기 등 일부 어류는
수컷이 수정란을 자신의 육아낭에 담아
‘임신’을 하기도 합니다.

부화할 때까지 수정란을 보호하며
양분을 공급하는 거죠.

 

(이미지=임신한 수컷 해마, 뉴욕 수족관)

 

그러면 이런 물고기들이
수정을 대하는 태도는 어떨까요?

수컷은 수정 과정에서
상당히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큰 투자 비용을 치르는 만큼
좋은 유전자를 가진 암컷을
고르려고 노력하는 거죠.

하지만 암컷은 공격적으로
최대한 많이 수정을 시키려고 합니다.

서로 간택을 받으려고 수컷 앞에서
화려한 무늬와 크기를 뽐내며
치열하게 경쟁하기도 하죠.

대다수 육상 동물과
성 역할이 반대인 거예요.

 

남녀가 다른 이유

따라서 성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건
암컷이냐 수컷이냐가 아닙니다.

임신이라는 값비싼 투자를
누가 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 조각들이 깔끔하게
잘 맞아떨어지지 않나요?

자연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거가
한 곳을 가리킨다는 건
아주 중요한 지점입니다.

연재 첫머리에 ‘임신’이라는 요인 하나로
남녀의 심리 차이를 설명하겠다고
말씀드린 걸 기억하실 겁니다.

남녀가 성관계에 대해
다른 심리를 갖는 이유는
그저 문화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심리의 배경에는
분명 진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부정하는 분이 많습니다.
'진화심리학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죠.

다음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드리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흥미로운 진화심리학의 세계로
함께 떠나보시죠!

 


[수컷과 암컷 사이] 시리즈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진화심리학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연애는 훨씬 즐거워질 거예요! (편집자: 문형진)



필자: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JTBC2 《오늘의 운세》 고정패널 출연 중.
유튜브 《싸이들의 잡학사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