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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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엘사는 사실 회피형이었다? #1

아래 본문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그림자가 온다

엘사가 얼음성을 짓고 나서
미소 지으며 문을 쾅 닫아버린 것은
어릴 때의 성문 닫기, 즉
회피형 행동을 반복한 것입니다.

얼핏 멋있고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미숙한 방어기제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거죠.

분석심리학에서는 마음의 한 부분을
외면하고 억압할수록 그 힘은
더욱 강해진다고 가르칩니다.

이때 억눌린 부분을 통틀어
‘그림자’라고 부릅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강해지니
정말 지혜로운 비유라고 해야겠죠.

 

 

억눌러 놓은 애착 욕구, 즉 안나가
끝끝내 얼음성까지 찾아간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엘사가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안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그림자는 억압하지 않고
바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극복할 수 있는데 엘사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죠.

 

고통스러운 깨달음

눈사람 올라프와
크리스토프의 도움으로
마침내 얼음성에 도달한 안나.

엘사는 안나에게 진실을 듣게 됩니다.

자신만 도망치면 아렌델 왕국은
평화로울 거라 여겼는데
뜻밖에도 온 땅이 얼어붙었다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심하게 절망한 엘사는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면서도
안나에게 어서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라고 종용합니다.

자기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고장난 기계처럼
과거에 쓰던 방어기제를
필사적으로 반복하는 거죠.

이때 잠시 통제를 벗어난 엘사의 힘이
안나의 심장을 얼려버리고 맙니다.

엘사는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이번엔 거대한 눈 괴물을 불러내어
안나 일행을 쫓아냅니다.

 

 

이 눈 괴물은 사랑을 원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때려눕히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회피형이라면
이미 알고 계실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때려눕히고 있는지 말이에요.

회피형은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그 마음을 두들겨 패고 내쫓고 외면하고
‘문을 잠가’ 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다치지 않을 거라
여기기에 하는 일이지만, 사실 마음은
우리가 그렇게 가혹하게 굴 때
더 심하게 다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올라프가 알려주는 것

<겨울왕국>에서 인간이 아닌 캐릭터들,
올라프(눈사람)와 트롤들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바로 스승이자 안내자의 역할이에요.
제작진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대변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따스한 아렌델 왕국을 되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올라프는 ‘여름을 좋아하고
따뜻한 포옹을 원하는 눈사람’이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입니다.

또 엘사와 안나의 관계가 단절되기 전인
어릴 때 같이 놀면서 만든
눈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대사는 올라프가
음양의 두 성질을 한 몸에 가진,
좀 어려운 말로 ‘대극의 합일’을
상징하는 존재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여름과 겨울, 안나와 엘사,
이 두 극단을 이어주고 섞어주고
조화시켜 주는 존재가 올라프인 거죠.

조화로운 왕국(마음)을 되찾으려면
양극의 균형을 추구해야 하고,
여름을 되찾고 싶다는 이유로
겨울을 없애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엘사가 너무 강해져도 곤란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꼭 엘사가 필요해요.

타인과 경계를 긋지 못하는 사람,
마음에 아무 장벽도 없는 사람 역시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관계를 냉각하는 방어기제 자체를
악마화하는 것도 옳지 않은 길이라는 걸
영화는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진정한 사랑의 행동

이번엔 숲속의 지혜로운 종족
트롤들의 말을 들어볼까요?

 

 

안나 일행은 이 말을 듣고
왕자의 키스를 받아야 한다면서
급히 성으로 돌아갑니다.

<겨울왕국>이 전통적인 동화 서사를
그대로 재현하는 야심 없는 영화였다면
아렌델은 왕자와 안나의 사랑 덕분에
정상적인 계절을 되찾았을 거예요.

하지만 성에 있던 왕자는 사실
악당이었음이 드러나죠.

그러면 제작진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사랑의 행동은 무엇일까요?

영화 후반에서 올라프가
간단한 한마디로 가르쳐줍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 내 몸이 녹더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거야.”
(Some people are worth melting for.)

 

 

바로 이게 영화 <겨울왕국>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기꺼이 상처 입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
이것이 회피형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열쇠라는 거예요.

회피형 방어기제를 상징하는
엘사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도망치고 또 도망쳤지만,

사실 우리 마음은
상처 입을 위험을 수용했을 때
진정한 관계 속의 풍요로움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풍요로운 왕국

종반부는 일일이 소개하지 않을게요.

일단 지면이 부족하고(ㅋㅋ),
또 직접 보다 보면 어떤 장면이 뭘 뜻하는지
짐작해보는 재미도 있을 테니까요.

<겨울왕국>은
회피형의 내면에서 활동하는
두 가지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애착과 친밀감을 원하던 안나는
상처를 두려워하던 엘사가
사랑의 힘을 깨닫도록 이끕니다.

덕분에 왕국, 즉 회피형의 마음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구원을 얻게 되죠.

 

 

이렇게 애착 욕구가 해소되자
억눌려 있던 심리 에너지는
건강한 방향으로 발산되기 시작해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엘사는
왕성 한가운데서 힘을 발휘해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는
스케이트장을 만들어냅니다.

한때는 자신을 고립시키는 데
사용했던 힘으로 이제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주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저주가 축복으로 전환되면서
<겨울왕국>은 해피 엔딩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마음이 얼어붙은 채 10년, 20년을
보내고서야 회복의 계기를 찾거나,

혹은 평생을 관계에 실패하며
보내는 일도 적지 않아요.

만일 그런 비극이 여러분의 이야기 같다면,
<겨울왕국>이 던지는 메시지가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줄지도 모른답니다.

 


문형진 에디터의 후기

어제 겨울왕국 2도 보고 왔습니다. 1편 이상으로 상징을 들이부은 영화였어요. 전 두 번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