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비밀의 정원>에 날아온 사연

20대 후반인 저에겐 

2년 사귄 남친이 있습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안 되는 점이
딱 한 가지 있어요.

항상 제가 여자친구라는 걸
쉬쉬하고 숨긴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얼마 전에 응원도 할 겸
회사 앞에 찾아갔더니,
되게 당황하더라고요.

“온 김에 오빠 팀원분들
커피라도 돌리고 갈까?” 했는데
극구 만류하고 바로 돌려보내지 않나..

최근엔 남친 집 근처에서 데이트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오빠 부모님한테 인사라도 드릴까?” 했더니
마찬가지로 슬슬 피하더라고요..

게다가 저와 찍은 커플 사진을
한 번도 sns나 카톡에
올린 적이 없어요.

이젠 결혼 얘기도 진지하게 오가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왜 숨기냐고 물으면, 그냥 남들 입에
얘기 오르내리는 게 싫다고만 대충 말하고..

저를 꽁꽁 숨기는 남친,
너무 섭섭한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남자친구의 속마음

보내주신 사연을 보고
에디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많이 갈렸습니다.

회사 앞까지 찾아온 애인을
숨기는 남자친구가
어딘가 좀 수상하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냥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아무 문제 없다는 의견도 있었죠.

 

두 쪽 다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저는 신청자님의 섭섭함에
힘을 실어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얼마 전 읽게 된
<숨기는 연애>에 대한
심리학 연구 때문이죠.

 

좀 숨기면 어때서?

콜로라도 주립대의 저스틴 박사는
오랜 연구 끝에
“숨기는 연애는 되도록 피해라!”라는
연구 결과를 내어놓았습니다.

신청자님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362명을 분석해 내린 결론이죠.

그들의 애정과 자존감,
현재 심리 상태를 조사했더니..

‘공개 연애’를 하는 커플들만큼
깊은 사이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던 겁니다.

 

깨져야 하는 벽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건,
‘숨기는 연애’가
발전된 사이로 가는 길을 막는
커다란 벽(barrier)이 되기 때문이에요.

자,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가정해보죠.

단순히 연애를 ‘시작’하는 건
두 사람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깊고 발전된 관계가 되려면
두 사람만의 힘만으론 부족해요.
이땐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필요합니다.

둘이 하는 연애에 
왜 다른 사람이 필요하냐고요?

커플의 성장은
아이가 자라는 과정과 똑같아요.

마치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처럼,
한 쌍의 커플도
여러 사람들을 '함께 만나고 경험'해야
계속 성장할 수 있거든요.

그걸 ‘관계의 확장
(Social Extension)’이라고 부르죠.

애인을 숨기는 연애는
그럴 기회조차 없는 겁니다.
작은 틀 안에 갇히고 마는 거죠.

 

‘숨기는’은 ‘비밀’과 다른 뜻이다

하지만 모든 숨기는 연애가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닙니다.

둘의 합의 하에 잠시 진행되는
‘비밀 연애’인 경우엔
오히려 남들보다 뜨겁고
오래 가는 사이가 될 수도 있어요.
(Wegner et al., 1994)

남들 앞에선 몰래 숨겨두었던 애정이
둘만 있을 때 배로 폭발하는 효과 때문이죠.

물론 이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좋은 비밀 연애'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관계를 숨기는데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2. 그 이유를 상대에게 설명했는지
3. 그래서 합의가 되었는지
4. 그 기간이 너무 길지는 않은지

 

요구하세요

아무래도 신청자님의 경우는
2, 3, 4번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죠?
제대로 된 설명과 합의가 없었으니까요.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남자친구의 성향은 이해해줄 수 있지만,
그래도 숨기는 연애의 악영향이 크다 하니
가만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요구해야죠!
"그 나쁜 영향들을 극복할 만큼의
애정과 믿음을 달라"고요.

"그리고 나를 더 설득해달라"고요.

지금까진 그 과정이 너무 부족했어요.

이제 결혼 얘기를 시작하셨다고 하니
좀 더 당당히 요구하세요.

애인을 숨기는 이유가
정말 다른 것 없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기 싫어서’라면
당연히 최선을 다해 신청자님을 설득할 겁니다.

아무쪼록 이 요구를 해보시길 바라면서,
얼른 만인의 인정과 축복을 받는
행복한 결혼까지 골인하시길 기원해요.


김관유 에디터의 후기

그래도 부모님 소개는 미리 약속 잡고 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