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낯설다…?

영화 <완벽한 타인>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오늘은 연인 사이의 ’비밀’이라는 키워드로
이 영화를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스포일러가 불편하신 분은 뒤로...)

먼저 영화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커플 모임에서 한 명이 게임을 제안한다.
각자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통화부터 문자까지 모두 공유하자고 한 것.

흔쾌히 게임을 시작하게 된 이들의 비밀이
핸드폰을 통해 들통나면서
처음 게임을 제안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상치 못한 결말로 흘러가는데….”

세상 누구보다 가깝고 친밀한 부부 사이.

하지만 영화 말미에 그들은
‘완벽한 타인' 관계로 전락합니다.
그동안 숨겨 왔던 비밀들 때문이죠.

 

정말 솔직한가요?

부부나 오래 만난 커플들은
자신들이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아요.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게’ 많은 거겠죠.

그런데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게 잘못한 것도 아니라면
왜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까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데 말이에요.

그 힌트를 얻기 위해
요크 대학의 로날드 버크 박사가 실시한
설문 조사를 잠시 살펴봅시다.

박사는 부부 189쌍에게
어떤 문제나 고민이 생겼을 때
배우자에게 100% 털어놓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 남편과 아내의 이유가
각각 달랐다고 해요.

 

왜 말 안 했어? (*스포주의*)

아내들이 남편에게 입을 다무는 이유 1위는
'남편에게 부담을 주거나
괜한 걱정을 시키기 싫어서’ 였습니다.
(Burke, Ronald J., 1976)

<완벽한 타인>에서도
정신과 의사인 예진(김지수 분)은
평소 아버지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남편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사위를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가
늘 남편의 자존심을 긁는 말을 하기 때문이죠.

수현(염정아 분)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그녀는 요즘 들어 남편과의 관계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혹시나 괜한 부담을 줄까 봐요.

 

반면 남편들의 속마음은 조금 달랐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 1위는
‘집 안에 문제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서’ 였어요.
(Burke, Ronald J., 1976)

대부분의 남편은 집 밖에서 벌어지는
골치 아픈 일들을 아내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가장의 책임감 때문이죠.

영화에서도 성형외과 의사인 석호(조진웅 분)는
투자 사기를 당했다는 것과
자신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변호사인 태수(유해진 분)도 아내에게
법률사무소 일이나 재판 이야기를 함구합니다.
밤새 일에 집중하기 위해 각방을 쓰기도 하고요.
철저하게, 가족과 일을 분리하죠.

 

당신을 위해서 그런 거야

영화 속 부부들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날수록
갈등은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상대에게 소리치고, 자신을 탓하고,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합니다.

그리고 배려라는 이름으로 숨겨 왔던 것들이
관계를 좀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죠.
(물론 바람처럼 악질적인 비밀도 밝혀집니다.)

그들이 배우자에게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선의에 가까웠죠.

하지만 비밀이 쌓여가는 동안
두 사람은 점점 멀어집니다.
어느새 서로에게 낯선 사람으로 존재하죠.

게다가 서로 말을 안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만 우리 관계를 위해
참고 노력하는 것 같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수현이 남편에게 읊어주는
<잠수>라는 시처럼요.

"사랑 속에 얼굴 담그고
누가 더 오래 버티나 시합을 했지.

넌 그냥 져주고 다른 시합 하러 갔고
난 너 나간 것도 모르고
아직도 그 속에 잠겨있지.”

 

너무 멀어지기 전에

두 사람 사이에 생긴 비밀은
필연적으로 밝혀지기 마련이에요.
지금이냐 나중이냐 차이일 뿐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커플은
오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기 전에
서로에게 진실하길 바라요.

조금이라도 빨리
서로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 보세요.
다소 부끄러운 모습일지라도요.

만약 애인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면
‘카타르시스 대화법’을 참고해도 좋을 거예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면 클릭!)

그것이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지,
더 단단해진 다음 단계로 이끌지는
두 사람의 노력에 달려 있겠지만요.

알 수 없는 이유로
애인과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면,
일단 서로를 드러내고
진실을 마주하는 데서부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겁니다.

마치 석호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요.

“나는 우리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었어.
그래서 몰래 상담도 받았던 거야.

그런데 아까 당신 얘기를 듣고 깨달았지.
당신도 우리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구나, 라고.

당신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몰랐어.
미안해요.”

 

p.s 본문에 사용된 썸네일 및 이미지는
영화 <완벽한 타인> 의 스틸컷을 사용했습니다.


홍세미 에디터의 후기

"인간의 본성은 잠시는 가릴 수 있어도
금세 돌아와 본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