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그 남자의 사랑
늘 자신이 모자라고
불완전하다고 느끼는 하은 씨.
그런 하은 씨가 어느 날 소개팅에서
그야말로 완벽한 남자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훤칠한 외모에 부드러운
말씨와 매너를 갖춘 남성이었어요.
지적이면서도 온건해서
어떤 주제가 나오더라도
여유 있게 대화를 이끌어 갔죠.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굳이 뽐내지 않으면서도
열등감이라곤 한 자락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편안하고 안정된 태도였습니다.
하은 씨는 첫 만남에서
그에게 빠지고 말았고,
그 남자 또한 하은 씨에게
호감을 나타냈죠.
몇 번의 만남을 가진 뒤 하은 씨는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멋진 남친을 곁에 두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외모, 다정한 태도에
매일 아침 안부 문자도 빼먹지 않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남친 말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은 씨는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유니콘 같은 남친이 생겼는데도
행복하지가 않았거든요.
대체 어떤 이유였을까요?
왜 하필 날 좋아하지?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하은 씨는 불안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그 남자에게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거울을 볼 때마다 뾰루지, 주근깨,
눈가 주름, 나쁜 안색이 거슬렸고,
은근한 뱃살과 휜 다리마저
하은 씨를 괴롭혔습니다.
게다가 남친에 비하면
하은 씨는 스펙도 집안도
내세울 만한 게 없었어요.
그가 자신을 값비싼 레스토랑에
데려가거나 멋진 선물을 줄 때면
하은 씨는 자신이 작게만 느껴졌습니다.
티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하은 씨는
이 남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초조함과
더불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자격지심마저 느끼고 있었습니다.
남자친구는 변함없는 애정을 보냈지만
하은 씨는 이 연애를 계속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뿐이었죠.
부정 편향
하은 씨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아마 여러분의 머릿속엔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있을 거예요.
물론 자존감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은 씨와 똑같은 상황에 있어도
행복하게 남친의 사랑을 누리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꼭 그 문제만은 아니에요.
불안과 의심은 인간 본성에 가깝거든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 감정보다 훨씬
강도가 높고 오래갑니다.
(Baumeister et al., 2001)
진화적으로 말하면 부정적인 정보는
생존에 더 중요한 정보예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숲에서 커다란 곰이
움직이는 기색을 알아챘다고 해보죠.
이때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불안과 두려움을 너무 많이 느낀다면?
다른 사람보다 불행하긴 하겠지만
오히려 수명은 더 길 수도 있을 거예요.
설령 몇 번이나 없는 곰을
있다고 착각한다 하더라도
잠깐 기분이 좋지 않을 뿐,
생존에는 아무 문제가 없겠죠.
그런 이유로 우리는 삶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긍정적 감정보다 부정적 감정을
훨씬 더 잘 느끼도록 진화한 거예요.
기분보다는 생존이 중요하니까요.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만
부정적인 사고는 거의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단적인 예로
6,800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면
10명 중 9명은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싶어한다고 해요.
(Hudson and Fraley, 2016)
‘완벽한’ 연인과 그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자신을
비교하며 불안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 본성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전문가의 조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양창순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그 사람이
당신을 선택한 이유는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당신이 장점으로 여기지 않은 부분이
그 사람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어요.
‘급’이 맞아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일 뿐이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내가 다른 사람을 ‘급’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답니다.
그 사람은 당신의 장점을 알아보았고
당신에게서 행복과 위안을 얻기에
지금 당신 곁에 있는 거예요.
그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나만의 고유한 내면에서 나오는 거라서
스펙이나 사회적 위치와도 무관해요.
그 사람에게 그런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은 거예요.
양창순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연애 상대가 내 곁을 떠난다면
그건 그에 비해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예전 같지 않은 내 모습에 실망해서다.
연애에서 완벽함이란 두 사람이
서로 변함없이 사랑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힘을 주며
힘든 세상에서 위로를 주는
관계 자체에 있을 뿐
사람에게 있지 않다.
그도 나도 완벽하게
불완전한 사람일 뿐이다.”
혹시 너무도 완벽해보이는 연인을 만나
왜 하필 나 같은 사람을 좋다고 하는지
불안하고 의심스럽다면
이 말을 꼭 기억하세요.
연애의 완벽함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관계 그 자체에 있다는 것 말이에요.
문형진 에디터의 후기
딴 얘긴데, 사실 전 키우던 개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개들은 어떻게 그렇게 인간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개가 보여주는 절대적이고 순수한 애정을 받기엔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인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