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뭔지 모르겠어요
내 앞에 앉은 C씨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녀는 경상도 토박이인
무뚝뚝한 성격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감정 표현이 서툴긴 해도,
스스로 감정이 메말랐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왜인지 연애 감정만은 달랐다.
상대와 함께 있으면 즐겁지만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절실한 감정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같이 갔던 곳에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흐른다는데,
그녀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님도 사이가 좋은 편이셨어요.
자주는 아니어도 애정표현도 하셨고요.
저만 로봇이 된 거 같아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말도 못 꺼내겠어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의 문제는...
C씨의 고민은 두 가지 방향에서 설명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감정 표현 불능증의 가능성이다.
감정 표현 불능증이란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거나
묘사하지 못하는 정신 병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가슴이 뛰고 몸이 떨린다면
보통은 ‘내가 불안하구나’라고
알아차리기 마련인데,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진 경우
‘왜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지?
심장에 문제가 있나?’라는 식으로
감정 상태를 알아차리는 대신
함께 나타나는 신체감각에만 주목한다.
이런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공감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분들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기쁨, 슬픔과 같은 단순한 감정은
느끼고 또 설명할 줄도 알지만
사랑처럼 복잡하고 세밀한 감정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로 억압, 혹은 억제라는
방어기제가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다.
억압이란 힘든 기억,
또는 괴로운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억누르는 과정을 말한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슬픈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마음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억압의 방어기제가
자동으로 작동한 결과일 수 있다.
또한 어린 시절 겪은 이별과 관련된
트라우마로 인해 성인이 된 후에도
타인과의 깊은 감정적 교류를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 억제란 강렬한 감정을 느꼈을 때
그것을 표현하는 대신
의식적으로 참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을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억제의 방어기제가
습관처럼 몸에 뱄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실제 느끼는 감정보다
더 낮은 강도로 감정을 인식하고,
인지할 수 있는
감정의 종류와 폭도 줄어든다.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C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 느끼는 감정에 대해 탐색하고
그것을 좀 더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라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는
‘뭐든 다 잘될 것 같이 들뜨고 신이 난 상태’,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감’과 같이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여보자.
표현을 잘 하지 않으면
감정을 인식하는 범위가 줄어드는 것처럼,
반대로 마음속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려고 시도하면
점차 세밀한 감정까지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덧붙여 C씨에게 스스로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고민해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랑이란 복합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또 한 가지 형태로
정해져있다고 볼 수도 없다.
연인과 함께할 때 느꼈던 즐거움 역시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그런데 간혹 사랑에 대해
판타지를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
‘사랑이란 뭔가 특별하고
강렬한 어떤 감정일 거다’라고만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다면
자칫 실체도 모르는
대상을 쫓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구체화해보고
그동안 느꼈던 감정과
어떤 면에서 다른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랑이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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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오동훈
연세온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팟캐스트&유튜브 채널 <뇌부자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