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데자뷰

정신과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 중에
‘전이’라는 말이 있다.
정신 분석가인 프로이트가 고안한 개념으로,
내담자(환자)가 치료자(의사)를 만나 대화할 때
과거 중요한 관계의 인물(부모 등)에게서
느낀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이
중년의 여성 치료자를 만났을 때
이유 없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이는 어머니에게 느꼈던 두려움과 반감이
현재의 치료자에게 옮겨온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치료자와 과거의 인물 간에는
어떠한 유사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이, 성별, 목소리, 외모 등의 유형적 요소는 물론,
성격이나 두 사람의 관계가 갖는 특수성 같은
무형적 요소 역시 전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전이되는 감정은 방금 예시처럼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연애에서의 '전이'

범위를 좀 더 확장해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 속에서도
전이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연애다.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에게
묘한 거부감이 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2년 전쯤 바람을 피워서 헤어진 남자친구와
목소리나 말투가 비슷했다는 걸 깨닫게 될 수 있다.

긴 생머리와 하얀 피부를 가진
직장 동료에게 느끼는 설렘과 끌림은
어쩌면 지독하게 좋아했던
첫사랑 누나를 향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들이라
억지로 밀어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전이 감정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느 순간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전이'의 위험성

하지만 '전이'의 감정
언제든 연애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과거 인물과 관계를 맺을 때의 패턴
현재의 상대와도 반복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독 자상한 아버지를 뒀던 B는
자신을 세심하게 챙겨주는
7살 연상의 남자에게 매력을 느껴
연애를 시작했다.

사귀는 동안 남자친구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덜 챙기면
B는 서운함을 느꼈고
결국 두 사람은 자주 다투게 되었다.

B는 남자친구에게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기대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남자친구는 남자친구일 뿐 아버지가 될 수 없고
그래야 할 의무도 없다.

두 사람이 만들어가야 할 관계는
아버지와 딸처럼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서로를 동등하게 배려하는
성인 간의 결합이어야 한다.
B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핍이 만들어낸 상상

그런데 전이가 실존 인물이 아닌
상상 속 인물로부터 파생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게 중요한 인물과의 관계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않을 때
내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이상적인 인물을 상상 속에서
가공해 내는 것이다.

진료실에서 만난 A가 그랬다.
A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일에 바빠
A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했다.

항상 외로움을 느끼던 A는
마치 키다리 아저씨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돌봐주는
이상적인 아버지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문제는 그녀가 성인이 된 후,
이러한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맞는 상대를 만나면
앞뒤 재지 않고 급격히 빠져들고 만다는 것이었다.

처음 진료를 받으러 왔을 때
A는 자신보다 스무 살 많은
유부남 상사와 몰래 만나고 있었다.
이처럼 결핍에서 시작된 감정의 전이는
위험한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A와 B는 충분한 기간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이미 오래 기간 굳어져 버린
심리적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단추이다.

  • 나는 만나고 있는 상대의
    어떤 점에 끌리는 걸까?
  • 내가 느끼는 끌림이 
    과거의 해소되지 않은 감정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
  • 그 감정을 바탕으로 나는 상대에게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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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오동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소아정신과 전문의
연세온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팟캐스트&유튜브 채널 <뇌부자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