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바람둥이 유전자가 탑재된 이유

1편: 진화론이 연애랑 무슨 상관인데요?
2편: 남자와 여자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3편: 왜 남자에겐 바람둥이 유전자가 탑재됐을까 ← 보고 계신 글
4편: 진화 관점에서 본 ‘여사친’이 위험한 이유
5편: 모든 남자가 바람둥이로 진화하지 않은 까닭은?

이전 연재에서
남자와 여자가 다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2편: 남자와 여자가 다른 이유)

여자는 임신을 하고,
남자는 임신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어떻게 남녀의 차이를 만드는지 알아보았죠.

오늘은 그 차이가 어떻게
성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만드는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수컷과 암컷’은 몇백만 년 전
우리 조상에 대한 이야기이고,
‘남성과 여성’은 현재 우리의 이야기라고,
구분해서 보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편 댓글을 보니
조상 수컷과 암컷의 이야기와
현재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를
혼동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현재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조상 수컷과 암컷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조상 수컷의 이야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몇백만 년 전에 한 암컷만을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조상 수컷과
여러 암컷을 한꺼번에 만나려 하는
바람둥이 조상 수컷이 있었다고
가정해볼게요.

지고지순한 수컷의 경우,
한 암컷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
암컷이 평생 가질 수 있는
약 10명 정도의 자식만 낳을 수 있어요.

반면 바람둥이 수컷의 경우에는
자식 숫자에 제한이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몇십 명, 몇백 명도 가능하지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처음에는 지고지순한 수컷과 바람둥이 수컷이
같은 수만큼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바람둥이 유전자를 가진 수컷이 늘어날 거예요.

바람둥이 수컷은 바람둥이 유전자를 지닌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은 또다시 수많은
바람둥이 자식을 낳기 때문이죠.

성관계를 더 쉽게 생각하는 조상 수컷일수록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조상 수컷은 성관계에
더 개방적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남자가 바람피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기 위해 남성에게 유리하게
짜 맞춘 것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안타깝게도
수컷에게 훨씬 가혹한 조건입니다.

수컷이 많은 암컷을 취하려 한다는 명제는
수컷에게 유리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암컷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는데
많은 수컷들이 서로 그렇게 하려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서로 더 많은 암컷을 취하기 위해
혈투가 벌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소수의 우월한 수컷만이
수많은 암컷을 거느리게 되고
다수의 수컷은 성관계 기회조차 박탈당합니다.

사실 동물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바다코끼리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관찰된 모든 교미 중 88%가
겨우 4%의 수컷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조상 암컷의 경우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한 수컷만을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암컷과
여러 수컷을 한꺼번에 만나는 바람둥이 암컷이
있다고 가정해볼게요.

암컷은 수컷과 다른 시나리오로 흘러갑니다.

암컷은 수컷처럼 바람둥이 전략을
취한다고 해도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수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조상들이 살아온
몇백만 년 전 환경을 상상해보면
암컷 혼자서 야생 환경에서 자식을 기른다는 것은
생존에 무척이나 불리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암컷에게는
많은 수컷을 만나는 전략보다는
내 옆에서 나와 자식에게
헌신하는 수컷 하나를 찾는
지고지순 전략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죠.

그래서 조상 암컷은 수컷에 비해
성관계를 맺는 데 있어
더 보수적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수컷과 암컷은 임신을 하고, 하지 않는
차이로 인해 성관계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아주 다른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조상의 이야기를
살펴봤는데요,

지금의 남성과 여성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닮은 듯 닮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겁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닮은’ 부분과
‘닮지 않은’ 부분이 무엇인지,

성관계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가
지금의 남성과 여성의 모습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컷과 암컷 사이] 시리즈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진화심리학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연애는 훨씬 즐거워질 거예요! (편집자: 구자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JTBC2 《오늘의 운세》 고정패널 출연 중.
유튜브 《싸이들의 잡학사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