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여는 글
알랭 드 보통의 연애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엔
특별한 로맨스가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남자인 ‘내’가
평범한 여자인 클로이를 만나
평범하게 연애하고 이별하는 이야기죠.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처럼요.
알랭 드 보통의 소설로
우리의 연애 읽기,
그 첫 페이지를 시작합니다.
낭만적 운명론자가 되다
12월 초의 늦은 아침,
런던행 비행기를 탄 '나'는
옆자리의 낯선 여자와
우연히 말문을 틉니다.
몇 번의 대화가 이어지고…
런던에 도착했을 즈음엔,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죠.
사랑에 빠진 '나'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자신과 클로이가
- 바로 오늘
- 같은 비행기를 타고
- 옆자리에 앉아
- 대화까지 하게 될 확률은,
989.727분의 1.
이 정도의 확률이라면
운명 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냐고.
‘우리는 운명이었어!’
이 엄청난 해석을 덧붙이고 나자
'나'의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이름은 '낭만적 얼간이'
꼭 특정한 사람들만
운명론자가 되는 건 아니에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누구나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걸 대단한 일인 것처럼
부풀려서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러다보면 문득
(잠깐의 몽상일지라도)
운명인가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럼 내 사랑이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더 멋지고 엄청난 것이 되니까요.
코넬 대학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 교수는
이 낭만적 운명론을
Fatuous Love라고 이름 지었어요.
(Sternberg, Robert J., 1997)
직역하면 '얼빠진 사랑'!
펄펄 끓는 사랑을
자기 자신도 주체할 수 없어
얼빠진 상태가 된다는 뜻인데요.
이런 사랑에 몰입한 사람들은
상대를 향한 열정은 물론,
인연에 대한 확신도 매우 강하다고 합니다.
운명을 믿을 만큼요!
사랑을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는 모습이죠.
사랑했다는 증거
쑥스럽지만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약 5년 전,
A를 소개팅으로 만났는데요.
A와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
이런 상상을 한 적 있거든요.
- 내가 A와의 소개팅을 거절했다면?
- 3개월 전 다른 남자의 고백을 받아줬다면?
- A와 내가 다른 학교에 다녔다면?
- 소개팅 주선자가 A와 같은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 내가 이 소개팅을 스무살 때 했더라면?
- A가 만약......
쓸데없는 공상임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가정들을 나열하다보면
이 인연이 진짜 더욱
로맨틱하게 다가오는 거예요.
'신기해! 이런 게 운명은 아닐까?'
맹세코, 저는 원래
운명론자도 아닌데 말이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그 분과 사랑에 빠진 '운명'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
좀 바보 같아 보이면 어때요.
연애를 하는 누구나,
사랑을 한다면 누구나 겪는 일인 걸요.
(그 분을 사랑한다는 증거랍니다.)
'나'와 클로이의 연애,
첫 만남 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갈게요.
p.s.
로버트 스턴버그 교수는
'낭만적 얼간이' 말고도
사랑 유형 8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어떤 타입의 사랑을 하고 있는지,
스턴버그 교수의 이론으로 만든
<사랑 유형 테스트>로 확인해 보세요.
최지윤 에디터의 후기
(미정이지만) 코너 이름은
책 이름을 그대로 가져올까 해요.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