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만나? 헤어져

연애 고민이나 사연을 보면
“왜 그런 사람을 만나냐,
헤어져라”라는 댓글이 참 많죠.

눈치 채셨을 수도 있겠지만
연애의 과학은 고민에 답할 때
“헤어져라”라는 말씀은 가능하면
드리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물론 데이트 폭력 등
잘잘못이 너무나 명백한 경우는
예외고요.

오늘은 저희가 왜 그러는지
좀 설명을 드리려고 해요.

 

급한 사마리아인

인간에게는 뿌리 깊은
편향이 하나 있습니다.

연애의 과학에서도 몇 번 다룬
근본적 귀인 오류라는 거예요.
(fundametal attribution error)

귀인이란 말이 좀 어렵죠?
쉽게 말하면 ‘원인을 돌린다’는 말입니다.
혹은 ‘탓한다’고 해도 되겠죠.

근본적 귀인 오류란,
타인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원인을
그 사람이 처한 조건이나 상황보다는
그 사람의 본질에서 찾는 오류입니다.

 

 

이 오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을 하나 소개할게요.

미국 프린스턴 대학 연구진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타인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어요.
(Darley & Batson, 1973)

실험 대상자들이 지나가는 길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노숙자를 배치한 거죠.

노숙자는 누군가가 지나갈 때마다
콜록콜록 기침하며
끙끙 앓는 신음을 냈습니다.

 

 

어떤 사람은 노숙자를
돕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고,
또 어떤 사람은
그냥 지나쳤어요.

이들이 다르게 행동한 이유는 뭘까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도와준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그냥 지나친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사실
이 실험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장래에 목사가 될
신학대학원생이었습니다.

사전에 연구진은
이들에게 근처 건물에서
간단한 즉석 설교를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때 조건을 달리했어요.

일부 대학원생에게는
“설교시간에 늦었으니
서둘러달라”고 말한 반면
다른 원생들에게는
“여유가 있다”고 했던 거예요.

 

 

늦었다는 말을 들은 원생 중
노숙자를 도운 사람은
10%뿐이었어요.

반면 여유 있다는 말을 들은
원생들은 무려 63%
노숙자를 도우려고 멈춰섰습니다.

그렇다면 노숙자를 도와준 건
그 사람이 착해서가 아니라
급하지 않아서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내로남불의 뿌리

한마디로 우리에게는
상황을 과소평가하고
본질을 과대평가하는
편향이 있어요.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선한 본질이,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악한 본질이 있다고 믿어버리죠.

단편적인 행동 한두 개만 보고
마땅히 헤어져야 할 ‘본질’
가진 사람으로 판단해요.

 

 

그런데 이 편향은 유독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는
가끔 나쁜 행동을 하더라도
거기에 상황과 조건
크게 작용한다는 걸 아니까요.

무례하거나 이기적으로 굴고 나서도
‘그때는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같은 이유를 들어 합리화하죠.

한번 나쁜 행동을 했다고 해서
자신이 본질마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참고: ‘내로남불’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답니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헤어져” 하기 전에

연애 고민을 들었을 때
가장 하기 쉬운 답이 바로
“헤어져”예요.

헤어지는 게 그렇게 쉬웠으면
애초에 고민 상담 같은 걸
할 필요도 없었겠죠.

그런 이유로 연애의 과학은
가능한 한 고민하는 당사자가 처한
조건과 상황을 생각해보려고
애쓰는 거랍니다.

섣불리 누군가가 나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말이에요.

만약 친구의 연애 상담을 해준다면,
혹은 남의 연애 사연에 댓글을 단다면
헤어지라고 충고하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많은 한계를 가진 종족이라
타인의 조건과 상황을
전부 다 알 수가 없으니까요.

 


문형진 에디터의 후기

저도 연애 고민을 읽다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헤어져”라는 반응이 올라옵니다. 일단 그걸 눌러놓고 다시 생각해야 의미 있는 답변이 나오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