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아프다

연애는 나를 크게 바꾸는 사건입니다.

관계가 깊을수록 우리는 상대가
나에게 섞여드는 경험을 하게 되죠.

이별이란 그렇게 나와 속속들이 얽힌 상대를
억지로 잘라내는 외과수술 같은 거예요.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겠죠.

(참고: [하소연툰] 헤어져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빠르게 낫게 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보통 이별한 뒤에
상대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나
장소를 피하려고 합니다.

이별을 생각하면 괴로우니까
최대한 떠올리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행동이에요.

하지만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그레이스 라르손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이별에 대해 더 생각하는 편이
괴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요.

라르손 박사는 몇 년간 이별과 이혼에
대해 연구하다가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혹시 연구 때문에 설문에 응답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 참가자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괴로운 이별에 대해 계속 떠올리고
이야기하다 보면, 상처가 아무는 것도
더 늦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박사는 21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이별 스트레스 연구가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오히려 연구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이별을 더 빨리 극복했거든요.

이별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연구에
응답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일종의
치유 효과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중요한 것은 참가자들이 실험 속에서
반복적으로 지난 관계와 이별을
돌아보고 떠올려야 했다는 점이에요.

 

너를 돌아볼 때마다

현대 뇌과학이 밝혀낸
두 가지 사실이 있어요.

  1.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재구성된다.
  2. 뇌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출처: EBS '원더풀 사이언스')

 

지은 씨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고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은 씨는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지만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받았습니다.

이별 직후에는 이 사실이
무의미한 불의의 사고와 같아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아무도 믿을 수 없고 하늘이 원망스러웠죠.

아무 이유도 의미도 없는 고통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은 씨는 기억을 돌아볼수록
그 연애가 갖는 의미를 차차 깨닫게 됩니다.

생각해보니 전 남친은 나쁜 놈이 맞지만,
그 관계 덕분에 자신의 미숙한 점도 알게 되었고
남자 보는 눈도 더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것이 다음 연애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준다면
아픈 시간에도 이유와 의미가 생기는 거예요.

기억을 아무리 돌아봐도
똑같은 방식으로만 떠오른다면
이렇게 관점이 바뀌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1.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재구성된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기억은 다시 구성될 때마다
점차 의미를 띠게 됩니다.
(2. 뇌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지난 관계를 돌이켜보는 과정 자체가
이별의 기억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면서
더 받아들이기 쉬워지는 효과가 나타난 거예요.

상대에 대한 생각을 피하기만 해서는
이별의 아픔을 의미 있는 기억으로서
소화할 기회조차 없는 셈이죠.

 

비온 뒤 마음 굳히기

위에서 연애란 두 사람이 섞여드는
경험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한번 합쳐졌던 두 사람의 정체성을
‘너’와 ‘나’로 다시 떼어내고 나면
그 빈자리는 괴로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별이 의미 있는 기억
되고 난 다음에는, 마음의 빈자리를 다시
내 인생의 이야기로 채울 수 있습니다.

잠깐 라르손 박사의 말을 들어볼까요?

“실험을 계기로 기억을 돌이키는 동안
참가자는 혼자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응답한 녹음 내용을
분석해 보니, 이별 과정을 묘사할 때
‘우리, 저희’라는 말을 훨씬 적게 쓰더군요.”

“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더 뚜렷하게
느낀 것은 물론이고, 외로움이나
이별 스트레스도 크게 낮아졌어요.”

 

그러니까 헤어졌을 땐

미련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무작정 잊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분명히 있습니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이별을
다시 생각해내는 거예요.

일기를 쓰거나,
집에 있는 반려동물이나 화분에게
이별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혹은 녹음기에 대고 독백을 해도 됩니다.

뭔가 갖추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자유롭게, 담담하게 돌아보세요.
누구한테 보여주려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다 보면 억지로 잊으려 하지 않아도
점차 그 기억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일컫는 말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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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진 에디터의 후기

이미 자신의 정체성이 뚜렷했던 사람은 이별도 더 수월하게 극복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