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너무나 쉽게 결정했는데
결혼식 준비는 전혀 순조롭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잘하고 싶었는데
모든 것이 다 어려웠다.
한국의 결혼식은
웨딩 플래닝이며 스드메 패키지며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여지가 있지만,
미국의 결혼식은
예비 부부가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야 해서
정말 손이 많이 갔다.
당시 직면한 가장 큰 고민은
들러리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난 친구가 꽤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고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내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줄 친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첫 번째 들러리는 쉽게 정했다.
누구나 가장 친한 친구는 떠올리기 쉬우니까.
문제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들러리였다.
결국 유학 시절에 만난
대학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한 명은 늘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술을 마시면 주사를 부렸다.
내 결혼식에서 몸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남자들한테 치근덕댈 그녀를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
다른 한 명은 애를 두 명 키우는 아기 엄마였는데
케이크 시식을 하러 가자든가
드레스 입어 보러 가자고 전화를 걸면
대부분 받지 못했다.
겨우 받더라도
옆에서 애기가 빼액하고 울어버려
함께 결혼식 준비를 하기가 어려웠다.
나머지 한 명은
나보다 3살이 많은 싱글이었는데
내 결혼식 준비 기간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난 평생 결혼도 못 하고 나이가 많아
애도 낳지도 못할 거야”라며
우울감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내 결혼식에 무슨 리본을 쓸지
상의할 수가 없었다.
손님 자리에 나갈 냅킨 색깔까지
신부가 결정해야 하는 미국식 결혼식이었다.
나는 혼자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고민 끝에
결국 들러리를 교체해야겠다고 이해를 구했다.
대학 친구들은 이해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은 기분이 상했는지 두 명이 결혼식에 불참했다.
이후로 아직도 연락하지 않고 있다.
한 번은 청첩장을 줄 겸 만난 친구 모임에서
내 반지를 보고 한 명이 대뜸 물었다.
“그 반지 몇 캐럿이야?”
“글쎄.. 1.5캐럿 정도인 거 같아.”
“딱 1.5? 정확히 몇? 너 그거 알아?
1.4하고 1.6은 가격 차이가 크게 나잖아.
1.5부터는 캐럿당 가격이 올라가거든.
니꺼는 1.5 이하같이 보이는데?
내 반지가 1.6이라 잘 알아.”
나는 잘 모르겠다며
네 것이 더 커 보이긴 한다며 넘겼지만,
그 친구는 내 행복과 자기 행복의 크기를
비교했던 것 같다.
반면 이런 일도 있었다.
유학하면서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어릴 적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축하한다며 미국까지
축의금을 보내주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너 결혼한지도 몰랐는데.
난 아무것도 못 해줬는데
받기가 미안해서 안 되겠다.”
그러자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일이 뭐가 중요해.
지금부터가 중요하지. 잘 살아.
그리고 앞으로 좋은 일 슬픈 일
함께 하며 지내자.”
결혼 준비를 하면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다.
결혼하면서 인생의 동반자와
새로운 가족을 얻었지만
동시에 잃은 것도 있었다.
바로 내 미래와 행복에 크게
관심이 없는 주변인들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를 응원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어째서 결혼을 인생의 2막 첫 장이라
일컫는지 알 것 같았다.
결혼 생활은 다양한 인간관계로 채워진다.
갑자기 남편이라고 부르기로 한 사람과
평생 원만하게 지내야 하는 관계.
모르고 살던 사람들과
남편이라는 매개체 하나로
가족이라 묶이는 관계.
자식이 생기면 자식과의 관계,
자식으로 인해 알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
결혼 생활 대부분이 인간관계로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 준비는
좋은 연습 게임이었다.
앞으로 물밀 듯이 쏟아질
새로운 관계들의 정립에 도움이 되었달까.
정리된 주변이 고맙고 반가웠다.
손톱 정리하듯 지저분한 살을 삭 잘라내고
깔끔한 손톱으로 새 출발하는 기분이었다.
[실전 결혼] 시리즈
"결혼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아티스트 심지아. 그녀가 결혼 생활 속에서 겪게 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가감 없이 전해 드립니다. 누군가의 솔직한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린 연애와 결혼에 대한 많은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을 거예요! (에디터 : 홍세미)
필자: 심지아
결혼 6년차, 엄마 3년차, 인간 40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