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 시아버지는
나와 시어머니의 팽팽한 기운을 참지 못하고
여러 차례 조정을 시도하셨다.
어느 날은 내게 전화하시더니
시어머니가 그달 말쯤
한국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하셨다.
그러면서 본인이 돈을 줄 테니
그걸 시어머니께 용돈으로 주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애들 엄마가 자식이 용돈을 줄 때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걸
그렇게 좋아한단다.”
하지만 나는 용돈을 드리고 말고 할 것은
우리가 결정할 바이며
드린다 하더라도
우리 사정에 맞추어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앞으로 드리고 뒤로 받는
이상한 행동을 해가면서까지
‘친구들에게 자랑’해야 하는
시어머니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아버지 말씀대로 하면
나와 시어머니 사이가
더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분들이 계속해서 나를
딸처럼 여기겠다고 주장하시는 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평생 남으로 살다가
갑자기 가족이라는 제도에 묶여버린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나를 낳고 키워 준
내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와
비슷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런 생각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우리의 관계는 계속해서
삐딱선을 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부모님을 싫어한 건 아니다.
반대로 그분들의 삶을
아련하고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시부모님은 정직하고 성실하신 분들이다.
같은 이민자로, 부모로, 사회인으로 보았을 때
존경할 만한 분들이다.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늘 자식이 있었다.
시아버지는 미국에 이민 왔을 당시
11살이었던 남편이
학교 공부에 뒤처질까 걱정하셨다.
남편이 영어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던 가게에서 틈틈이 공부해,
남편에게 하루에 두 시간씩 예습을
시켜주셨다고 한다.
시어머니 역시 아이들 챙기느라
자신의 인생을 전부 반납하며
젊음을 흘려보내셨다.
하지만 내가 그분들의 삶을
가슴 아프게 여긴다고 해서
그 삶에 대한 보상을 해드려야 할 의무는 없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이니까.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선택할 때는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본인이 지는 것이지,
자식에게 책임지라고 요구할 수는 없으니까.
물론 자식이 고맙게 여겨
부모에게 보답하고 싶다면
그것은 진정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가 이룬 가정을 먼저 챙긴 후
적당한 선 안에서 부모님을 챙긴다면,
그것을 막을 권리도
그 부담을 나누어야 할 의무도
내게는 없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나는 평소 남편에게
시부모님께 잘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
남편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신 분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 몫이
내게 넘어온다면 철저히 거절했다.
나는 시부모님께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구분했다.
나의 이런 태도에 시부모님께서
실망하신 적이 많았지만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나의 의무도 아닌데
내가 수행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착한 며느리가 되기보다
그냥 ‘나’이고 싶었다.
어른을 만나면 웃으며 인사하고
좋아하시는 음식을 기억해두었다가
식사할 때 가까운 곳에 놓아두는 정도의
배려를 가진 사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매일 같이 문안 인사를 의무적으로 드리고
시댁에 가면 일 하러 온 것처럼
종일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되바라진 젊은 것이라는
욕을 먹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되바라진 젊은 것이
통념 속의 노예보다 백배 나았다.
사실 보통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대부분이 우리 시부모님 같을 것이다.
열심히 살면서 사랑으로 자식을 키웠고
자식을 다 키우고 나니 왠지 헛헛해,
어쩐지 성인이 된 자식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
괜히 딸보다 아들에게 의지하고 싶은데
남자들은 표현을 잘하지 못하니까
며느리가 좀 대신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
100% 이해한다.
다만 그 대상은 며느리가 아니라
본인이 젊음을 바쳐 키운
자식이 되는 게 맞다.
엉뚱한 남의 집 딸에게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걸 일깨워 드리는 게
바로 이 시대 며느리들의 역할이다.
누가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월드 문화는
대통령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유관순 같은 인물이 뛰쳐나와
혁명을 일으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내가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불합리한 관계를 바꾸기 위해
당당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
사랑받는 며느리,
사랑받는 부인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어떤 역할에 맞추어 행동하고
그로 인해 사랑받는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서로 이해하려는 마음과
법적인 가족 관계일 뿐이라는 생각이
상충하여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애초에 남이라 생각하고
기초적인 관계를 정립하면
그 후 쌓이는 것들이 생긴다.
정도 쌓이고 노력도 쌓이고 시간이 쌓인다.
점점 ‘진짜 가족’처럼 변해간다.
생판 남으로 시작해서 쌓아가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방식이
처음부터 가족인 척하다가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는 것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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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심지아
결혼 6년차, 엄마 3년차, 인간 40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