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생활을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 강사로 일하고 싶었다.
부모님도 한국에 들어와서
천천히 준비해보라며 응원해주셨다.

그런데 귀국을 서너 달 앞두고
남편을 만나 갑자기 인생이 전환되었다.

당시 내가 교수가 아닌
시간 강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결혼한다면 육아와 내조에
전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만
그때는 전업주부의 꿈을 갖고 있었기에
나는 남편이 나를 먹여 살릴 능력과
책임감을 갖춘 사람이기를 원했다.
남편 역시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혼인 신고를 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미국 생활을 이어가려면 새 휴대폰을 사야 했다.
남편 만나기 전부터 귀국 준비를 하던 터라
임시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대폰 매장에 갔는데
직원이 여기에 가족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남편이 있다고 했다.

직원이 고개를 기웃하면서
그러면 요금제로 가족 요금을 선택하지,
어째서 따로 하느냐고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확실히 그쪽이 저렴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가족 요금이 좋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헷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럼 그걸 내가 다 내는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황당해서 그에게 쏘아붙였다.
“그럼 누가 내? 난 지금 학생인 데다
당신이 한국 가지 말라며?
옆에 있으라며?”

 

 

평소 남편은 내게 커피값조차
내지 못하게 했던 터라 굉장히 의외였다.
언제는 나를 목숨만큼 사랑하니까
한국에 가지 말고 자기 옆에 딱 있으라더니!

서로의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말들이 오갔다.
그동안 우리가 연출했던 로맨스 무비가
시시콜콜한 생활의 냄새가 나는
인간 다큐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저 사람은 이 결혼으로
내가 얼마나 큰 변화와 모험을 겪고 있는지,
자기가 어떤 책임을 안게 된 건지 전혀 모르나?’
머리가 복잡했다.

밤새 생각을 정리한 뒤
다음 날 남편을 앉혀놓고 물었다.

난 유학생이고
여태껏 부모님 도움으로 생활해왔어.
졸업하고 나서 한국에 돌아가면
강사 자리를 구해볼 생각이었는데
여기 남게 되면 그조차 어려워.

게다가 나는 원래 결혼하면
전업주부로 지내고 싶어했잖아.
당신이 반대하면 일자리를 찾아보겠지만
나는 이제 막 결혼한 외국인이고
전공 상 취업이 녹록지 않을 거야.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당신은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휴대폰 요금이나 나머지 생활비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남편은 돈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내가 자기 집에 살더라도
휴대폰 비용이나 각자 쓰던 생활비는
막연히 각자 해결할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그런데 내 얘기를 듣고 보니
네가 원한다면 전업주부 하면서
신혼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한번 그렇게 해보자고 답했다.

 

 

다음 날 같이 은행에 가서
남편 계좌에 내 이름을 추가했다.
내 이름이 적혀 있는 빨간색 체크 카드도 받았다.
남편은 소꿉놀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부모님 돈이 아닌 남의 돈을 써도 될까.
전에 데이트했던 남자들이
밥을 사주거나 선물을 사준 적은 있어도
돈을 받아 직접 사용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하루는 장을 보러 갔는데,
커다란 칠레산 전복이 있었다.
남편이 좋아할 것 같아 전복을 사서
버터에도 굽고 찜 요리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몰랐는데 전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전복이 보여도 카트에 담는 일이 없어졌다.
나는 전복을 무척 좋아하지만
남편이 벌어온 돈인데
나만 좋아하는 비싼 식재료를 사는 게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꺼려졌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같이 한국에 갔는데
엄마가 남편에게 용돈으로 이백만 원을 주셨다.
남편은 안 받겠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기어코 남편 손에 돈을 쥐여 주셨다.

며칠 후
남편 외할머니께 인사드리러 요양원에 들렀는데
남편이 엄마에게 받은 돈 가운데
백만 원을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가 너무 늙고 병드셔서
나도 안쓰러웠기 때문에
남편에게 그 일로 따져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게 상의 없이 드린 점이 섭섭했고
우리 엄마에게 받은 용돈의 반을
자기 할머니에게 용돈으로 드리는 건
경우에 어긋난다고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불편한 기분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과 나 둘 다 ‘각자의 돈’을
‘우리의 돈’이라는 개념으로 바꾸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위에 언급한 어색함이나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지만,
여전히 돈 문제는 결혼으로 인한 변화 가운데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결혼 생활에서 힘든 점은 재정 상태를 포함한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내 수입, 내 가족, 내 자식이
우리 수입, 우리 가족, 우리 자식이 되어야 하므로
의견도 절반씩 수렴되어야 하고
역할도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점이 어렵다.

게다가 무엇이 얼마나 ‘공평한지’에 대해서도
각자 생각이 다르기에 더 어렵다.

 


[실전 결혼] 시리즈
"결혼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아티스트 심지아가 결혼하면서 겪게 된 에피소드를 전해 드립니다. 누군가의 솔직한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편집자: 홍세미)



필자: 심지아

뉴욕 거주중.
결혼 6년차, 엄마 3년차, 인간 40년차.
결혼생활 어찌저찌 유지중.
본업 아티스트, 부업 자유 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