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냥 혼인 신고할래?"

남편(당시 남자친구)은
차이나타운 중국집에서 국수를 먹다
마치 ‘만두 좀 더 먹을래?’라고 권하듯
별스럽지 않게 말했다.

할로윈 파티에서 처음 만났는데
크리스마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말을 하다니,
우리가 통성명한 지 겨우 두 달 만이었다.

나는 당시 유학생이었고
미국에서 취업할 계획이 없었던지라
미국 시민권자인 남친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내 얘기를 듣자마자
남편은 고민도 않은 채 말했다.

“난 롱디 연애로 오래 갈 거라고 믿지 않아.
만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쭉 생각했는데
어차피 난 너랑 결혼하게 될 것 같아.
근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결혼식 준비하기엔 시간이 없으니까
혼인신고부터 하지 뭐.”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4개월 만에
혼인신고를 마쳤다.

몇 달 후 정식으로 로맨틱한 청혼도 받았고
결혼식을 한다면 꼭 하고 싶었던
나파밸리의 빅토리안 양식의
예식장도 예약했다.

친구들을 만나 결혼 소식을 알리며
"The One을 만나니 모든 것이 너무나 수월하다,
결혼이라는 게 이렇게 쉬울 수 있단다”라며
감격에 찬 소감을 전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 나는
결혼 준비도 이렇게 술술 굴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식을 하기로 한 식장에서
손님을 몇 명이나 초대할 건지 연락이 왔다.
남편이 초대하고 싶은 사람 리스트를 가지고 왔는데
2백 명이 넘었다.

“제정신이야?
우리가 예약한 곳에는 겨우 백 명
들어가는 건 알고 있지?
내 손님은 아예 오지 말라는 거야?”
나는 거세게 반발했다.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할 때는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른 채
순조로운 피아노 연주곡 같더니
이후로 우리의 불협화음은 계속되었다.

하루는 피로연 자리를 어떻게 구성할지
이야기하다가 싸우게 되었다.

남편은 미국 영화에 나오는
디귿 모양의 긴 테이블을 원했다.
가운데에 신랑 신부가 앉고 양옆에 들러리가 앉고
가장 먼 자리에 가장 덜 중요한 손님이 앉는 방식.

나는 동그란 테이블을 주장했다.
신랑 신부는 둘만의 작은 테이블에 앉고
손님은 6명씩 그룹을 지어 둥근 테이블에 앉는 방식.

한참 동안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우리는 결국 폭발했다.

“나는 오빠가 이렇게 촌스러운 사람인 줄 몰랐어!
무슨 회의장도 아니고
긴 테이블 한가운데 왜 앉아야 하는데?
우리가 무슨 회장 부회장이야?”

“신랑 신부만 따로 앉는 게 말이 돼?
난 내 들러리 서주는 친구들이
내 옆에 앉아서 어깨도 서로 토닥이고
함께 축배 드는 결혼식을 원해.
너는 늘 이런 식이야!
왜 항상 따로 놀려고 하는 건데?”

우리는 서로를 맹비난하고 무시하고 상처를 줬다.
들러리를 몇 명이나 세울지,
식사는 닭고기가 나을지 생선이 나을지,
입장할 때 어떤 음악을 틀지,
모든 면에서 대립하는 이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결혼하면 평생 내 편을 얻으리라 생각했는데
어쩐지 내 인생 안으로 적을 하나 들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결혼 준비만 하는데도
벌써 시댁 식구들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본인들을
‘미국식 부모’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자식 부부에게 기대하는 것만큼은
너무나 한국적이고 보수적이셨다.

한편 한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은
딸을 미국으로 시집 보내면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런 부모님이 결혼 준비 과정에서
포기하고 실망하는 일이 잦아지자
점점 회의감이 엄습했다.
“이럴 바엔 그냥 엎어버릴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나는 결혼식장에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신부 입장하는 순간까지도
과연 이 결혼 잘하는 건지
되뇌며 걸어 들어갔다.

그런 내 머리를 탕하고 친 것은
주례로 모신 신부님의 말씀이었다.

“두 사람에게 결혼식 전,
각자의 삶과 사랑에 대해
적어서 보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두 사람의 편지를 보고 느낀 것은
두 사람은 각자 자기 자신을 찾으려
평생을 노력하고 고민하여
결국은 자신을 찾았고
그 후 서로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랬다.
인생의 절반은 나를 찾는 데 쓰고
이후로는 당신을 찾는 데
나머지 모든 시간과 기회를 사용했다.

그토록 어렵게 너를 만나서 이 자리에 섰는데
왜 그렇게 별스럽지 않은 일 때문에,
우리가 아닌 우리가 아는 사람들 때문에,
모든 게 흔들렸을까.
그런 생각에 문득 눈물이 났다.

 

 

남편이 말했던 것처럼
처음 보았을 때부터
평생 함께할 것 같은 확신이
흔들리는 이유는 어찌 보면 참 시시했다.

그러나 그런 시시한 것들 때문에
우리는 박 터지게 싸웠다.

상대와 함께하고 싶어서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그 도구인 결혼식 때문에
정작 중요한 상대방과 대립하는 것이다.

결혼한 후에는 더욱 잊게 된다.
내가 평생 찾고 싶었던 두 가지가 무엇인지.

조개 속 진주처럼
어렵게 찾은 관계의 특별함은
모래알 같은 평범한 것에
묻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관계에 대한 의심이 들 때면
나를 찾느라 헤맸던 시간과
그 후 상대를 찾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일을 떠올린다.

그러고 나면
일상의 자잘한 갈등 속에서
어떤 것을 내려놓고
어떤 것을 지켜야 할지
명확히 알게 된다.

 


[실전 결혼] 시리즈
"결혼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아티스트 심지아. 그녀가 결혼 생활 속에서 겪게 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가감 없이 전해 드립니다. 누군가의 솔직한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린 연애와 결혼에 대한 많은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을 거예요!
(편집자: 에디터 홍세미)



필자: 심지아

뉴욕 거주중.
결혼 6년차, 엄마 3년차, 인간 40년차.
결혼생활 어찌저찌 유지중.
본업 아티스트, 부업 자유 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