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 때엔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자,
너무도 사랑스러워
잠시도 가만 놔둘 수 없던 여자가

결혼을 하고 나면
지구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남자,
털끝 하나 건드리고 싶지 않은 여자가 되기도 한다.

나만의 경험담은 아닐 것이다.

친구에게 “왜 결혼할 때
자신을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냐”며
장난처럼 멱살을 잡힌 적도 있고,

"넌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냐"고 물었다가
비웃음을 산 적도 많았다.

결혼하기 전까진
이런 이야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렇게 살 바엔 차라리 이혼하겠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살 수 없고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

결혼을 결심할 때도
나만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난 운명의 짝을 만났고
세기의 사랑을 했으니까.

싸우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질려 하진 않을 거야.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결혼했다.

첫 2년 정도는
여러 가지 변화 때문에 많이 싸우고
끝이 없는 대화를 반복하면서도
좌절감이 들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육아 전투’에 돌입하면서
모든 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졌다.

특히 남들보다 훨씬
자유인 타입이었던 우리 부부에게,

‘작고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아직 말은 배우지 못한’
한 자그마한 인간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는
사람을 미치게 할 만큼 버거웠다.

그동안 공기처럼 누려왔던 자유가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왜인지 몰라도
우리는 자꾸 그 탓을 서로에게 돌렸다.
싸움과 비난은 잦아졌다.

삶에 지친 것인지
상대방에게 지친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날들이 자꾸 생겼다.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결혼 생활은 늘 행복하고
달콤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아주 불행하다고 볼 순 없다.

남편은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가족을 부족함 없이 잘 보살피도록
주중에는 열심히 일했고
주말이면 함께 나들이를 하러 갔다.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꼭 한국에도 함께 가줬다.

아가는 예쁘고 건강했다.
한번 웃어주면 집안이 천국으로 변했다.

그래도 내 결혼생활을 ‘한 나라’로 치자면
제법 선진국에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선진국의 국민 대부분이
먹고살 만하다고 해서
빈민층이나 독거노인들을
대충 못 본 척하고 살 수는 없듯이,

내 결혼 생활의 많은 부분이
행복했다고 해서
나머지의 부분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가끔 남몰래
‘이혼을 하면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날도 있었다는 걸 고백한다.

돌이켜보면 내 멱살을 잡았던 그 친구도
나와 같은 결혼생활을 하는 것뿐이다.

자신을 말리지 않았다며 멱살은 잡지만,
그날 저녁이면 집에 돌아가
가족과 한 식탁에서 행복한 저녁을 즐기고,
다음 날 아침엔 다시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제법 행복하고 제법 괜찮지만
제법 심각하고 제법 힘든 그런 생활.

내가, 또 그들이 그런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웬만한 문제는 눈 감고 넘어갈 것” 같이
아침 방송에 나올 법한 비법 덕분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결혼생활은
그런 것에서 거리가 멀다.

상대방의 결점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것과
둘 사이에 해결해야 하는 부분들을 외면하고
포기해버리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우리가 계속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이 땅이 더 좋은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투표를 하고 뉴스를 지켜보듯이,

내 작은 목소리와 작은 참여가
천천히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기를 염원하듯이,

배우자와 싸우고 부딪치고 좌절하더라도,
우리는 절대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대충 이 정도면 되었다’의 방식으론
아마 내 결혼 생활이
선진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끝없는 노력,
서로에 대한 의지,
그리고 지치지 않는 투지.

지금까지 내가 겪은 결혼엔
어설픈 이해보다
이런 것들이 더 많이 필요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
결혼 생활이라고,

그렇게 미리 경고를 해주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물론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실전 결혼] 시리즈
"결혼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아티스트 심지아. 그녀가 결혼 생활 속에서 겪게 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가감 없이 전해 드립니다. 누군가의 솔직한 결혼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린 연애와 결혼에 대한 많은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을 거예요! <실전 결혼>은 매주 토요일 저녁 연재됩니다.
(편집자: 에디터 김관유)


 


필자: 심지아

뉴욕 거주중.
결혼 6년차, 엄마 3년차, 인간 40년차.
결혼생활 어찌저찌 유지중.
본업 아티스트, 부업 자유 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