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 안해?

기껏 데이트를 나왔는데
저녁 내내 시무룩해 보이는 동주.

여자친구 여진은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캐묻습니다.

하지만 동주는 별일 아니라며
자꾸만 답을 피하네요.

 

 

여진은 남자친구가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아요.

힘든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데
고집스럽게 입을 다무는 동주를
이해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사실 여진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동주는 자기 고민에 대해
말하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말해봐야 속이 시원해지지도 않거든요.

동주의 속마음을 들어볼까요?

 

 

두 사람 사이엔
왜 이런 생각의 차이
나타나는 걸까요?

 

남자의 침묵

여자는 남자도 자신처럼
감정을 말로 풀어놓으면
속이 시원해지고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꽁꽁 숨기는
남자를 보고 이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미국의 비언어 소통 전문가인
토냐 라이먼은 “그렇지 않다”
대답합니다.

라이먼에 따르면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이유는
뇌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의 크기가 다르다는 겁니다.

 

 

평균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뇌량이 눈에 띄게 크거든요.

뇌량이 크다는 것은 곧
좌뇌와 우뇌가 서로
원활하게 소통한다는 뜻이죠.

일반적으로 좌뇌는 단어와 논리,
우뇌는 감정과 직관을 취급해요.

여자는 좌우 뇌가 활발하게
신호를 주고받는 덕분에
감정과 언어가 서로
떨어지기 어렵다고 느끼죠.

감정을 자극하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때,
그걸 언어로 꺼내놓지 않으면
머릿속이 개운해지지 않습니다.

반면 남성은 뇌 좌우보다
앞뒤 방향의 연결이 강해요.
(Ingalhalikar et al., 2014)

 

 

남자의 감정은 우뇌에
깔끔하게 잘 저장되어 있어서
좌뇌로 건너오지 않아도 됩니다.

다시 말해 좌뇌와 우뇌의
연결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만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고 나눠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여자가 남자더러
고민을 털어놓으라고 다그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남자는 순전히 여자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서
감정을 언어로 변환시켜야 합니다.

“지금 내 느낌이 어떻지?”
“이걸 무슨 말로 표현해야 되지?”
이렇게 말이에요.

게다가 기껏 다 털어놓고 나서도
상황이 바뀐 느낌을 별로 못 받죠.

대화로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면 굳이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거예요.

여자가 감정을 털어놓으면서
느끼는 해방감과 안도감
남자는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럼 티를 내지 말든가!

이렇게 말씀하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

‘티를 냈으면 말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티를 내는 이유는 말하고 싶어서다’라는
전제가 깔려있어요.

하지만 고민 있는 티가 난다고 해서
그게 꼭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고민이 있으니까
자연스레 표시가 난 것일 수도 있죠.

그걸 굳이 숨기라고 하는 건
조금 잔인한 일이 아닐까요?

안 그래도 고민 때문에 힘든데
티 안 내려고 연기까지 하려면
짊어질 부담이 두 배가 될 테니까요.

 

그냥 믿어주세요

감정을 꼭 말로 표현하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들이 많아요.

그런 남자에게 굳이
속내를 털어놓으라고 다그쳐봐야
자기만족 외에는 얻을 게 없죠.

그러니까 여자분들,
남자친구가 자기 고민을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냥 그 말을 믿어주세요.

재촉하지 말고 여러분이
남자친구와 같은 편이라는 것만
알게 해주세요.

남자친구도 분명 여러분의 배려에
고마워할 테니까요.

 

 


문형진 에디터의 후기

고백: 이 글은 과학적으로 아주 엄밀하진 않아요. ‘남자 뇌, 여자 뇌’ 같은 건 편의적인 표현이고, 뇌 연결성이나 뇌량 크기는 성별 차이도 있지만 개인 편차가 크거든요. 그런데 그 내용을 다 반영해서 쓰려고 했더니 글 분량이 두 배가 되더라고요.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