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 혹은 권리
“애인이랑 또 크게 싸웠어요.”
진료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A가 말했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둘이 있어요.
근데 그중 하나가 남자예요.
오랜만에 다른 친구 하나랑 같이
그 친구네 집에 가서 자기로 했거든요?
애인한테 말했더니 화를 내더라고요.
아무리 친구지만 어떻게
남자 집에서 잘 수 있느냐고,
늦게라도 집에 가서 자라는 거예요.”
잠시 숨을 고른 뒤 A가 말을 이어갔다.
“뭐.. 기분이 나쁠 수는 있어요.
근데 그걸 자기가 허락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건 좀 웃기잖아요.
제가 애인을 사랑하니까
애인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잠은 집에 와서 자겠다고
먼저 말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가 베푸는 호의죠.
애인이 저한테 그걸 당연하게
요구할 권리는 없잖아요.”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만약 A 씨가
반대의 입장에 놓이게 되면
애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신경은 쓰이겠죠.
그래도 저는 그건 애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결혼한 것도 아닌데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사이잖아요.
그런데 왜 서로에 대해
의무감을 가져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누구나 가진 애착 욕구
A의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100% 동의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진부한 로맨스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랑은 그런 게 아니야!”라는 식의
이야기를 내뱉고 싶은 마음도 약간 들었고.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애착 욕구’라고 부른다.
애착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라서
아무리 그런 것에 초연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속 한구석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살아 숨쉬기 마련이다.
나를 사랑해달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애착 욕구는 여러 가지 형태의 행동과 말들로
모습을 바꾸어 가며
호시탐탐 본인의 존재를 드러낸다.
“어떻게 다른 남자 집에서 잘 수가 있어?”
라는 애인의 말속에도 사실
“나는 너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괴로워”
라는 애착 욕구의 좌절이 담겨 있는 것이다.
A의 말대로 두 사람의 관계는
구속력을 가지는 법적 계약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연인의 정의를 고려해 보았을 때,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다면
적어도 상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애인이 A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할 권리는 없을지 몰라도,
A에겐 애인의 마음을 헤아려
애착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애착 대상’이 될 의무는 있지 않을까?
나의 의견은 그렇다.
분명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분들이
많으시리라 믿는다.
다양한 애착 욕구의 가면
그렇다면 “언제든지 끝날 사이인데
왜 의무를 져야 하나”라는
A의 ‘쿨한’ 마인드의 정체는 무엇일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애착 욕구는 사람의 본능인 만큼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 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애착 욕구가 충족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욕구를 억누르고,
자꾸만 외면하려 하며,
심하면 자신에게 그러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도 한다.
애착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음으로써,
좌절로부터 오는 고통을 줄이려는
일종의 ‘회피’ 전략인 것이다.
“관계는 어차피 끝나는 게 당연하다”
라는 A의 이야기는
사실 ‘지금 받고 있는 사랑이
끝날까 봐 정말 두려워.
그때 너무 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으니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거야’
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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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오동훈
연세온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팟캐스트&유튜브 채널 <뇌부자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