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관계는 특별하다.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하는
세상에 하나뿐인 관계니까.
하지만 아무리 특별해도
모든 관계에는 예외 없이
적당한 거리와 깊이가 필요한 법이다.
오늘은 연인 사이에서
너무 깊은 관계를 추구해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애인이 저만 바라보면 좋겠어요
30대 초반의 A는 연인과의 이별과
직장 내 스트레스가 겹쳐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다.
약물치료와 상담을 통해 단기간에 호전된 그는
치료를 마치려는 순간에
더 깊은 이야기를 이어 가고 싶어 했다.
그는 내게 직장 생활과 부모님,
일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지난 연애에 대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금세 건드리기는 힘들었나 보다.
그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동네 친구들과 호프집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내 귀에 익숙하고 흔한,
말 그대로 평범한 연애사였다.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다른 주제로 넘어갈까?’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넘어가긴 아무래도 찜찜했다.
공황장애가 이별 직후 발생한 점과
면담 초기에 연애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점이
특히 마음에 걸렸다.
그에게 연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A씨가 생각하기에,
A씨 연애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을까요?”
“음, 전 매번 연애할 때마다
기존 친구들 관계에 급격하게 소홀해져요.”
순간 '그게 그렇게 문제인가?
어느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그에게
왜 그러는 것 같냐고 물었다.
그러자 꽤 의미심장해 보이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 누군가가 온전히 저만을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친구에게 저는 여러 친구 중 하나일 뿐인데
애인에게는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요.”
헌신을 바라는 사람들
‘온전히 나만을 좋아해 주는 너’.
참 멋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연인을 꿈꾸는 사람은
이런 연애를 꿈꾼 대가로
마음의 고통을 치르게 된다.
너무나 특별한 관계를 기대하기에
내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고 느껴지는 순간마다
쉽게 실망하고 상처받는다.
나를 두고 친구를 만나는 네가,
야근을 해야만 하는 네가,
회식을 하러 가는 네가,
주말에 취미 생활을 즐기러 가는 네가,
내가 없는 순간들에 행복한 네가,
나를 덜 사랑하여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만 같아 괴롭다.
머리로는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이다.
이런 관계는 때때로 집착으로 이어져
두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또한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갑과 을의 관계가 여기서 형성되기도 한다.
(참고: 연애할 때 을이 되는 사람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의
심리 역시 과거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그것도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시절로부터.
아주 어린 시절,
아이에게는 ‘충분히 좋은 부모’가 필요하다.
아기는 배가 고파도 울고,
잠이 와도 울고,
안기고 싶어도 울고,
젖은 기저귀가 불편해도 운다.
아기의 다양한 욕구들을 잘 구분하고
충족시키기 위해선
많은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좋은 부모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최대한 참으며
아이에게 모든 집중을 쏟아붓는다.
이런 부모로부터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것과 온전한 사랑, 관심을 받은
아이는 심리적 안정감과 전능감을 얻는다.
(전능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느낌)
하지만 아무리 좋은 부모도 언제까지
모든 것을 주기만 하는 사람일 수는 없다.
부모도 지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는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집에서 경험하지 못한 좌절도 겪게 된다.
이때 아이는 전능감을 잠시 상실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지지해주는 부모로부터 용기를 얻는다.
그렇게 아이는 세상 속으로 점차 나아간다.
애인은 부모가 아니다
‘온전히 사랑받는 경험’
그리고 그것이 계속해서 완전할 수는 없다는
‘건강한 좌절의 경험’.
이 두 가지의 경험을 통해
아이는 성장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온전히 사랑받은 느낌이 부족하거나
건강한 좌절을 경험하지 못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
몸은 성장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시기에 머무르며
자신을 지지해줄 사람에게 집착하게 된다.
이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이성만 찾아다닌다.
간혹 그들이 자신에게
100% 헌신하는 연인을 만나도
결국엔 실망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연인도 지치기 때문에
헌신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애란 아기와 부모의 만남이 아닌,
성인과 성인의 만남이다.
애인은 아이의 욕구를
모두 충족해주어야 하는 부모가 아니다.
‘연애’라는 관계의 한계를 깨닫고
이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지나친 기대는 아닐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웠으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으려 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돌진하던 돈키호테의 말이다.
꿈이 없다면 너무나 슬픈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돈키호테의 로망에 빠져든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저 명대사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이성을 찾은 뒤에나
할 수 있었던 말이다.
이룰 수 없는 꿈과 사랑은 이룰 수 없기에
그만큼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결국 상처만을 주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는 꿈을 좇는 돈키호테와 더불어
그를 멈춰 세운 현실적인 친구,
카라스코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나는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어떤 기대를 하는 걸까?
혹시 과도한 기대가 숨어있지는 않을까?
진료실에서 만났던 A씨처럼
독자분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를 기대한다.
[문제적 연애] 시리즈
김지용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만드는 연애심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당신에게 꼭 필요한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편집자: 홍세미)
필자: 김지용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