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진화론이 연애랑 무슨 상관인데요?
2편: 남자와 여자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3편: 왜 남자에겐 바람둥이 유전자가 탑재됐을까
4편: 진화 관점에서 본 ‘여사친’이 위험한 이유
5편: 모든 남자가 바람둥이로 진화하지 않은 까닭은?
6편: 남자와 여자의 심리, 임신이 결정한다?
7편: 남자가 “너 걔랑 잤어?”라고 물어보는 이유
8편: 엄마 닮았는데도 '아빠 닮았다'고 하는 이유?
9편: 남녀가 스킨십에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
10편: 이성을 볼 때 ‘외모’가 중요한 이유?
11편: 외모를 볼 때 남녀는 다른 곳에 주목한다 ← 보고 계신 글

 

남자는 여자를 볼 때
외모를 유난히 중시하죠.

반면 여자는 외모뿐 아니라
이런저런 걸 복잡하게 따집니다.

또 외모를 볼 때에도
남자와 여자는
중시하는 요소가 다릅니다.

남자와 여자가 외모를 볼 때
공통적으로 중시하는 것이
좌우 대칭깨끗한 피부라고
저번 글에서 이야기했죠?

이번 글에선 외모를 볼 때
남녀가 이성의 어떤 점에
각기 주목하는지 살펴보고
그 기준이 왜 달라졌는지
이야기해볼게요.

 

여자는 왜?

이전 편에서 인류의 짝짓기 제도가
바뀌어온 과정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초기에는 일부다처제 위주의 사회였지만
부성 투자, 즉 아버지의 부양이 없으면
아기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일부일처제로 수렴하는 변화를 겪었죠.

인간에게는 오랜 옛날 일부다처제에
적응했던 심리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수컷과 암컷의 입장을
크게 갈라놓은 요인인 거죠.

먼저 조상 수컷의 입장에서 볼까요?

일부다처제 환경에서 수컷은
짝을 고를 때 신중할 필요가 없어요.

한번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타격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죠.
다시 선택할 기회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단순히 유전자 면에서 우수하고
건강해 보이는, 즉 외모가 빼어난 짝
선택하면 그걸로 OK입니다.

하지만 조상 암컷은 입장이 다릅니다.

일부다처제하에서 한번 결혼하고
거기다 출산까지 해버리면
짝 선택의 폭은 극도로 좁아지죠.

그 탓에 암컷은 신중할 수밖에 없고
짝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요인도
복잡해진 거예요.

암컷이 따져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요?

일부다처제 사회의 수컷 무리는
계급이 엄격하게 갈리고
자원의 편중도 심했습니다.

암컷이 출산하고 양육하는 데
수컷의 보호와 투자가 필요했기에
자원 확보 능력사회적 지위
절대 가볍게 볼 수 없었죠.

그래서 지금의 여성에게도
사회적 지위, 자원(돈), 리더십,
남성적인 힘 등에 매력을 느끼는
심리 기제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스스로도 자원이 부족하지 않죠.

그럼에도 자기보다 더 성공한
남성을 만나고 싶어하는 건
이런 진화의 유산 때문인 거예요.

한편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은
그런 심리가 상대적으로 희박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심리 차이가
어느 정도 그려지시나요?

 

남자의 몸, 여자의 몸

예쁘고 잘생긴 이성을 좋아하는 걸
문화적 영향에 따른 ‘외모지상주의’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진화심리학자들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시대나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게
거의 모든 인간 사회에서 중요시하는
외모 지표들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성의
허리-엉덩이 비율(WHR)이에요.

통통한 여성을 매력적으로 보는
문화도 있고 마른 여성을
떠받드는 문화도 있죠.

하지만 어느 문화든 공통으로 보는 건
바로 허리-엉덩이 비율이에요.

참고: 당신이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확인하는 확실한 방법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지금이야 의학이 발전했고
위생도 개선되어서
비교적 안전한 출산이 가능하죠.

하지만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출산은 산모와 아이의 생명마저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사건이었어요.

허리에 비해 엉덩이, 즉 골반 비율이
클수록 출산에 유리한 신체 구조인 탓에
수컷들은 어느 문화에서든
이 비율을 중시하게 된 거죠.

여성의 경우는 어떨까요?

많은 여성이 남성의 큰 키와 듬직한 체격
저항하기 어려운 매력을 느낍니다.

큰 체격은 야생 환경에서
알파맨, 즉 우두머리 남성으로
자리잡는 데 유리하다는 걸
알려주는 특징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쟤는 키가 크니까 부족에서
우두머리가 되기 쉽겠군!” 하고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남녀의 무의식을 다듬어 놓은
진화 역사의 잔재인 거지요.

 

취향의 문제

자, 그럼 이제 이런 의문을
가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유전자 우수성으로만 따지면
모든 사람이 같은 이성에게 매력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람마다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성이 다른 건 어떻게 설명하죠?”

한 가지 설명은, 진화적 안정 상태는
한 전략으로만 수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모든 여성이 키 큰 남성만
좋아하는 전략을 택한다면,

키는 작아도 다른 뛰어난 특징이
있는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이
이득을 본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 특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복잡한 선호가 발달하게 된 것이랍니다.

또한 인간에겐 면역을 담당하는
HLA(human leukocyte antigen)
유전자가 있는데요.

다양한 세균 침입에 대항하려면
이 유전자의 다양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HLA 유전자와
다른 HLA 유전자를 보유한 이성에게
더 강하게 끌리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는 그냥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매력을 판단하지만, 이때 무의식은 상대의
유전자 정보까지 고려하고 있는 거죠.

 

진화한 마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의식은 1%도 채 안 되고, 무의식이
99% 이상이다”입니다.

무의식이 진화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기본 명제라고 할 수 있죠.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워낙
오해를 많이 받고 호불호가 갈려서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역시나 달아주시는 댓글을 보아도
호불호가 뚜렷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과학은 좋아할 일도
좋아하지 않을 일도 아닙니다.

그냥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은 마지막이니만큼
진화심리학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공유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컷과 암컷 사이] 시리즈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진화심리학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연애는 훨씬 즐거워질 거예요! (편집자: 문형진)



필자: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JTBC2 《오늘의 운세》, TV조선 《기적의 습관》 패널 출연 중. 유튜브 《싸이들의 잡학사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