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2살 최수지(가명)입니다.

고2 때부터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는데요,

재작년에 수능을 본 후
남자친구는 서울로 올라가고,
저는 대구에 남게 되면서
2년간 장거리 연애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떨어져 있는 동안 제가 바람을 피웠고,
지난 6월에 남친이 그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진심으로 반성하고 싹싹 빌어서
겨우 용서를 받았지만
그후로 남친의 속박이 너무 심해졌어요.

원래도 질투가 많고 구속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툭하면 폭언을 내뱉고, GPS로 늘 감시해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여자)과 술 마시러 가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고요.

가장 힘들었던 건,
잠시라도 연락이 안 되면
자살할 거라는 협박과 함께
자해한 사진을 보내온다는 거예요.

남친이랑 있을 때도
그 상처를 보면 너무 괴로운데...

그래도 제가 잘못한 게 있기 때문에
최대한 남친의 마음을 달래주고,
저를 믿게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어요.

이제 일하러 갈 때 빼고는 항상 집에만 있고,
친구들에게 연락이 와도 안 나가요.

하지만 남친은 무슨 말만 하면
‘거짓말 아니냐’는 식으로 늘 저를 의심합니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지난주에
제가 우발적으로 헤어지자고 말해버렸어요.

지금도 저는 여전히 남친을 사랑하지만,
다시 만나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정말 이대로 헤어져야 할까요?

 


에디터 기명균의 한 마디
“스스로를 과거에 묶지 마세요”


남친은 더 이상 수지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GPS 감시나 폭언을 내뱉는 것도 모자라
자해한 사진까지 보내며 협박하는 건,
수지님을 아낀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죠.

남친은 그저 배신감으로 가득차
‘너도 한 번 힘들어봐라’는 생각으로
복수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심지어 남친은 수지님의 잘못을 핑계로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어요.
니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니가 바람을 피웠으니까.

문제는,
거기에 수지님마저 동의하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내가 바람을 피웠으니까.

먼저 잘못했으니 언제까지고 계속
남친의 폭언과 감시를 참아내실 건가요?

아뇨, 그건 수지님과 남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잘 헤어지셨어요.

다만 제가 걱정되는 건
만약 남친이 다시 찾아와 폭언하고 협박해도
수지님이 딱 잘라내지 못할 것 같다는 거예요.

바람을 피웠다는 죄책감 때문에.

수지님은 남친에게 충분히 사과했고,
생활 패턴을 바꿀 만큼 반성했고,
필요 이상으로 남친에게 상처를 받았어요.

과거에 묶여 평생 자책만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그동안 친구도 못 만났다고 하셨죠?
일단 그럼 친구들을 만나세요.
만나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고 하소연하세요.

친구들은 아마 수지님을 욕하기보다
‘그동안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먼저 할 거예요.
사연을 읽는 저부터도 그랬으니까요.

지금 수지님의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위로인 것 같아요.

그걸 잘해줄 수 있는 사람, 친구를 만나셔야죠.
자꾸만 죄책감을 더 키우는 남친 말고요.

 


에디터 홍세미의 한 마디
“너무 심각한데요?”


폭언에, 위치 추적에, 자살 협박까지...
아무리 수지님이 바람을 피워서라고 하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네요.

지금은 수지님 잘못을 떠나서
남자친구 상태를 의심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남자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이나
애정 결핍의 징후가 보이거든요.

꼭 주먹으로 상대를 때려야
데이트 폭력인 건 아니에요.

연인을 막 대하거나,
연인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행동
모두 데이트 폭력에 포함됩니다.
일종의 언어적, 정서적 폭력이죠.

이런 데이트 폭력에 대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장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겁니다.

물론 당장 그러기가 쉽지 않죠.
수지님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수많은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이
현재 연인과 헤어지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거라고 생각한대요.
(참고: 폭력적인 연인과 쉽게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

게다가 수지님의 경우에는
본인이 잘못한 게 있으니
먼저 이별을 말하는 것이 미안하겠죠.

하지만 이렇게 정서적으로 학대 당하면서
계속 연애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수지님이 아프게 반성하시고
남자친구를 보며 괴로워한 것만으로
충분히 죗값을 치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남자친구의 상처는 수지님이
더 치유해줄 수 없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를 놓아주는 게 그에게 더 좋은 방법일 수 있어요.

두 분은 지금 사랑과 집착이라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수지님이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않고
이별을 고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그를 사랑한대도
이렇게 만나는 건 아니에요. 정말.

 


에디터 김관유의 한 마디
“이런 상황에선 좀 더 냉정해져야”


바람 피웠던 게 미안해서
남자친구가 신경쓰이고 걱정되는 마음, 잘 알겠어요.

하지만 바람을 피웠던 일이
수지님의 업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건 두 사람 모두가 망가져가는 일이에요.

자살할 거라는 협박, 자해하는 사진.

물론 이런 행동은
집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다시 관계를 이어가면 앞으로 남자친구의
자기파괴적인 행동은 점점 심해질 겁니다.
의심도 마찬가지고요.

동시에 수지님의 죄책감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겠죠.
그 돌고 도는 자기 파괴의 끝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어둡고 암울합니다.

두 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이만 관계를 마무리 지어야 해요.

마무리짓고도 힘드실 겁니다.
내가 한 행동 때문에
남자친구가 정말 자살이라도 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고 걱정에 시달리실 거예요.

그러다 남친의 연락이 오면
다시 만날까? 고민하실 거고요.
그래도 그 연락, 절대 받지 마세요.

정말 정말 못 견디겠다고 하면,
일단 연락을 받아주기 전에
딱 한번만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세요.

이 모든 일을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상담 받는 겁니다.

장담하건대, 저희 에디터들보다
훨씬 전문가이고 직접 치료 경험이 있으신
선생님도 재회를 극구 반대하실 거예요.

그게 남자친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수지님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