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마음
오늘은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
디즈니의 <겨울왕국Frozen>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일전에 제가 회피형 애착이 된 이유를
글로 쓴 적이 있는데(아래 링크 참고)
그때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도
회피형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겨울왕국>을 해석하는 방법은 참 많지만
저에겐 이 영화가 항상 회피형의 속마음을
그려낸 영화로 보였답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다시 <겨울왕국>을 보면
문장이나 단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깃들어 있는지
깨닫고 놀라게 되실 거예요.
혹시 아직 <겨울왕국>을 보지 않은 분은
본문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마음은 하나가 아니다
사실 우리 내면에는
하나의 마음만 있는 게 아니죠.
예를 들어 ‘라면을 먹고 싶은 마음’과
‘살을 빼고 싶은 마음’이 부딪히는 건
늘 있는 일이잖아요.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아렌델 왕국이
한 사람의 내면 세계라고 생각해 보세요.
국왕 부부, 엘사, 안나, 올라프 등은
우리 내면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욕망과 방어기제를 상징합니다.
마치 <인사이드아웃>에서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등이 서로 다른 감정을
상징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에겐 누군가를 가까이하며
깊이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애착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 반면 상처 입고 싶지 않아서
상대를 밀어내고 회피하려 하는
마음도 있죠.
<겨울왕국>에서 안나는 전자,
엘사는 후자의 상징입니다.
상처에 대한 두려움(엘사)이 강하게 발달해
자연스런 애착(안나)을 억누르는 방어기제가
된 것이 바로 회피형 애착유형이죠.
그래서 엘사의 강력한 마법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회피형의 마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첫 번째 상처
우선 영화 첫머리부터 보죠.
엘사와 안나는 어릴 적
사이좋은 자매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엘사는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드는 자신의 힘으로
안나를 다치게 하고 말았죠.
인생 최초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혹은 입힌)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회피형이 처음으로
“친밀감은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죠.
안나를 치료한 지혜로운 트롤 족장은
엘사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 힘에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또한 위험하기도 합니다.
두려움이 공주의 적이 될 것입니다.”
엘사의 능력은 벽을 세우고
얼려 버리는 능력입니다.
마음을 해방하고 자유로워지기보다
타인을 배척하고 자신을 가두는 힘이죠.
고독하고 품위가 있기에 아름답지만,
결국은 마음을 고립시키는 탓에
위험하기도 한 것입니다.
엘사와 안나의 아버지인 국왕은
엘사가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성문을 닫고 두 자매가 외부인을
만나지 못하도록 합니다.
또한 엘사는 안나에게 능력을 숨기고
더 이상 방에서 나오지 않게 돼요.
회피형이 상처를 피하기 위해
마음을 닫고 아무도 들이지 않기로
결심하는 장면이지요.
회피형은 타인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려
자신이 통제력을 잃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거나 두려워합니다.
닫힌 문과 장갑은 그런 회피형이
사용하는 방어기제의 상징이 됩니다.
엘사에게 장갑을 주면서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숨기고, 느끼지 마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마라.”
정말이지 회피형의 좌우명처럼
보이는 대사 아닌가요?
마음은 닫힌 방
국왕 부부는 굳게 닫힌
성 안에 자매를 남겨두고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는 한번 자리를 잡은
회피형 방어기제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에 남아있는 상황을 뜻합니다.
텅 빈 성에서 안나는 외로워하며
몇 년이고 엘사의 방문을 두드리다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회피형 방어기제를 통해
자연스러운 애착 욕구를 내면 깊숙이
억눌러 버리는 데 성공한 거예요.
하지만 곧 운명의 날이 찾아오죠.
바로 엘사가 여왕으로 즉위하는
대관식 날입니다.
이날 엘사는 마침내 성문을 열고
안나와, 그리고 ‘진짜 살아 있는’
사람들과 처음으로 마주합니다.
대관식은 회피형의 첫 연애라고
생각해볼 수 있어요.
자신을 꽁꽁 가둬놓았다가
마침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보기로 마음먹은 때인 거죠.
사랑을 원하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처음으로 직시하는 때이기도 하고요.
안나는 이날 초면인 왕자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기고
청혼까지 받아들이고 맙니다.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봤으니
당연히 서툴고 경솔할 수밖에 없죠.
왕자와 안나의 듀엣곡 제목인
<사랑은 열린 문>은
엘사의 닫힌 방과 대비됩니다.
대관식 날 안나는 엘사에게
“앞으로도 계속 오늘처럼 성문을
열어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엘사는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안 돼”라고 대답합니다.
“왜? 왜 안 된다는 거야?”
“그냥 안 돼!”
이것이 무의식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방식이에요.
논리로 풀려고 해서는
도무지 들어먹질 않습니다.
엘사의 표정에 깃든 생생한 고통과
두려움을 알아볼 수 있으신가요?
결국 엘사는 사랑을 원하는 안나를
거부하고 능력까지 들키고 맙니다.
어릴 때 입은 첫 상처에 이은
두 번째 상처입니다.
Let It Go
엘사는 황급히 왕궁에서 달아납니다.
그러면서 의도치 않게 아렌델 왕국에
끝나지 않는 겨울을 불러오게 돼요.
한때 풍요로웠던 아렌델 왕국은 이제
사철 눈이 내리는 얼어붙은 땅이 됩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려 했던
엘사의 의도는 분명 선한 것이었죠.
하지만 그 두려움 탓에
엘사는 자신의 모든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고 말았던 거예요.
도망친 엘사는 더 이상 자기 능력을
억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고
장갑을 벗어던집니다.
그리고 감춰 왔던 자신의 힘을
마음껏 펼쳐보이기 시작하죠.
이때 나오는 노래가 바로
그 유명한 <Let It Go>예요.
무엇을 의미하는 장면일까요?
저에게는 성장한 회피형이
자신의 성향을 합리화하는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엘사의 미숙한 마법은
진정한 사랑과는 반대되는 능력,
곧 사랑을 거부하는 능력입니다.
(아직 안 나온 장면이지만,
안나의 얼어붙은 심장을 치료하려면
'진정한 사랑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트롤 족장의 언급에서도 알 수 있죠.)
그 능력을 마음껏 해방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어요?
엘사는 화려한 얼음성을 세워서
자기 자신을 고립시켜 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소중한 동생과 자신의 왕국이
안전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말이에요.
타인과 가까워지면 어차피 상처만 입으니
아예 모든 사람에게 벽을 세우면
나쁜 일도 없어진다고 여기게 된 거죠.
아주 단단히 착각을 한 거예요.
이런 착각은 모든 회피형이
공유하는 것이랍니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절대로 불행해지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 바로 그 사고방식이에요.
그러므로 사실 <Let It Go>는
흔히 생각하듯 자유로운 본래의 자신을
해방시키는 노래가 아닙니다.
모든 애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상징하는 노래죠.
글이 너무 길어져
오늘은 이만 줄일게요.
가능하면 다음 편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문형진 에디터의 후기
꿈 분석을 할 때도 꿈 속 등장인물은 실제 당사자가 아니라 마음의 어떤 측면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답니다.